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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병원 졸업

by 장돌뱅이. 2022. 12. 7.

"이제 병원에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뼈는 완벽하게 되었습니다.
일상생활을 하시면서 손상된 근육을 다시 키우세요."

의사가 말했다.
백여 일만에 아내의 허리 문제가 병원에서 졸업 또는 독립되는 순간이었다.
다음 외래 일정도 없어졌고 주사도 없어졌다.

의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합격 통지서를 받은 수험생처럼 의기양양하게 병원문을 나섰다.
나는 힘든 시간을 견뎌낸 기특한 아내에게 맛난 저녁을 내겠다고 하고, 아내도 그동안 고생했다며 나에게 그러겠다고 했다. 우선은 예전에는 자주 갔지만 지난여름 이후로 가보지 못했던 공원을 오래 걸었다. 추운 날씨였지만 춥지 않았다. 혹한의 겨울을 견디는 나무들이 의젓해 보였다.

산짐승은 몸에 병이 들면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다
숲이 내려 보내는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제 혀로 상처를 핥으며 
아픈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나도 가만히 있자

- 도종환, 「병든 짐승」 -

한 여름에서 겨울까지 제법 긴 시간 '가만히 있어 온' 아내의 허리에 가만히 손을 얹어 보았다.

서로에게 내겠다며 거창할 듯했던 '한턱'은 던킨도너츠로 귀결되었다.
그것도 40%나 DC가 되는 가격으로. 오늘은 행운이 많은 길일임이 분명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던킨도너츠가 없던 90년 대 초 우리 가족은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처음으로 던킨도너츠를 먹었다. 그 때문에 아내와 내게 던킨도너츠는 매번 인도네시아를 떠올리게 한다. 그때 나는 어린 딸아이 몫까지 자주 가로채서 아내의 혀 차는 소리를 듣곤 했다. 

딸아이에도 엄마의 병원 졸업 소식을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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