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때문에 뜸했던 연말 모임이 올해는 부쩍 늘었다.
오래 만남을 가져온 동창 부부들과의 송년회도 2년의 공백 끝에 다시 가질 수 있었다.
관계에서 오래되었다는 것은 시시콜콜한 것을 서로 많이 알고 있다는 의미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그런 '시시콜콜함'이 주는 아기자기한 재미와 편안함을 좋아하게 되었다.
자잘한 이야기나 일상의 사진 따위를 단톡방에 자주 올리는 이유다.
연극이나 뮤지컬 같은 공연을 보고 식사를 하는 것이 이제까지의 송년 모임이었지만 이번엔 계속 한 자세로 앉아 있기 힘든 아내의 허리를 고려하여 식사 전 경의선 숲길을 걷는 것으로 대체했다.
아내가 모임 장소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탄 것은 100여 일 만에 처음이었다.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일상에서 사라져야 비로소 아내의 허리는 완전히 회복되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처음'은 무엇일까? 허리를 굽히거나 쪼그리고 앉아 싱크대 맨 하단의 조리도구를 혼자서 꺼내는 일쯤 될까? 그 간단한 일이 아직은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
낙엽이 진 경의선 숲길은 더 이상 숲길이 아니었지만 풍성함 대신에 차분함과 명징함이 있었다.
하루 전까지 거세게 불던 바람도 없어 걷기에 쾌적한 날씨였다.
시시콜콜해서 정겨운 수다를 나누며 예약을 해 둔 식당까지 걸었다.
공덕역 근처의 식당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코로나의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았다지만 사람들은 이제 익숙함으로 공포를 넘어선 것 같았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잔칫집 분위기의 떠들썩함이 싫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입가심 맥주파'와 '카페의 음료파'로 나뉘었다.
전자는 남자들이고 후자는 여자들이었다. 결론은 속절없이 조강지처들의 압승이었다.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경의선숲길을 걸어가며 적당한 카페를 물색했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수다를 이어갔다.
노년의 건강, 자식들과 손주, 여행과 일상 등 평범하고 편안한 이야기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김사인, 「조용한 일」-
모두, 그렇게, 앞으로도, 오래, 그냥, 조용히 옆에 있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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