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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그의 명복을 빕니다

by 장돌뱅이. 2022. 12. 10.

출처 : 울산교육청

"어?"
무심코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다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이냐고 놀라는 아내에게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울산 노옥희 씨가······"
화면에는 노옥희 울산교육감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이 속보로 떠있었다.
회의 중 갑자기 쓰러졌다고 한다.

대학 졸업 이후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나는 울산에서 보냈다.
울산은 아내와 신혼살림을 시작했고 딸아이가 태어난 곳으로 우리 가족의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통과한 80년대는 지금까지 내게 세상을 판단하는 어떤 강렬한 기준 같은 것을 만들어 주었다. 시대의 불의에 삶을 걸고 맞설 만큼 나는 투철하지 못했다. 늘 한 발은 뒷전에 두고 가족들과 생활을 가꾸는 일만으로 허우적거리며 살았다. 다만 치열하지 못한 삶을 부끄럽게 자각하고 엉거주춤하지만 나름 고민의 끈은 놓지 않고자 했다.

노옥희 씨는 그런 울산 기억의 중심에 있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고등학교 수학교사였던 그는 산업재해를 입은 제자의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면서 세상과 자신의 삶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전공과목만 열심히 가르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교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 없을지······

내가 노옥희 씨를 처음 만난 곳은 울산의 한 독서모임에서였다. 울산에서 알게 된 후배(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왜 나를 그곳에 소개를 해주었는지, 그가 누구인지조차도 지금은 기억이 흐릿하다.)의 소개로 들어가게 되었다. 학창 시절에 읽었던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나 『전환시대의 논리』 같은  사회과학 서적을 읽고 토론을 하는 모임이었다. 노옥희 씨는 큰 키에 차분함과 겸손함이 묻어나는 말투와 인상으로 독서 모임을 진행하고 있었다.

한 번은 독서회에서 무슨 날인가를 기념하여 마당극을 공연하자는 제안이 모아져 실제로 공연까지 했던 적이 있다. 마당극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이름 붙이기 민망한, 초등학교 학예회 수준의 어설픈 공연이었다. 제대로 된 연습이나 리허설도 없이 서투름을 즐거움이라 여기며 진행을 했다. 그나마도 어색한 고비마다 관객들이 알아서 도와주어 겨우 마칠 수 있을 정도였다. 주인공(?)인 여성 노동자 역할은 아마 노옥희 씨가 맡았을 것이다. 거기서 나는 주인공을 괴롭히는 강도 역을 맡았다. 한 때는 자신도 건실하게 살려고 발버둥 쳤던 청년이었다는 걸 재담을 섞어 늘어놓는 역할이었다.  

87년을 전후로 회사 일이 바빠지고 이런저런 일이 겹쳐 내가 모임에 나가지 않게 되면서 그를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우연히 울산 시내 서점 같은 곳에서 몇 번을 마주쳐 인사를 나누었을 뿐이다. 하지만 울산 지역의 노동 운동과 전교조 활동에 나선 그의 소식은 여러 경로를 통하여 들려왔다. 그는 세태의 변화에 흔들림 없이 처음의 열정 그대로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듯했다.

언젠가 딸아이와 함께 참석한 울산 전교조의 어린이날 행사에서 그를 만난 것이 마지막 대면이었을 것이다. "잘 놀아야 잘 큰다"는 현수막 아래서 선량한 미소를 짓던 그의 모습이 생각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울산을 떠나 해외살이를 시작하였고 또 서울로 이사를 하였다. 가끔씩 그가 선거에 나올 때마다  나는 선거운동 게시판에 간단한 응원의 글을 남겼을 뿐이다.

* 올 3월22일 아프가니스탄 '특별 기여자' 자녀들의 첫 등교 때 한 학생의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는 노옥희 교육감(출처: 경향신문)

올봄 아프가니스탄에서 우리 정부의 일을 도와주었던, 이른바 '특별 기여자'의 어린 자녀들이 첫 등교를 할 때 교육감으로서 그가 앞장서 환영하는 모습을 뉴스를 통해서 보았다. 유치원생과 초중고생 85명에게 차별 없는 교육 지원을 약속하고, 반대하던 일부 학부모들을 설득하는 한편,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직접 초등학생의 손을 잡고 등교를 했다고 한다.
'역시!'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에 접한 소식이 안타까운 속보였다. 인터넷에 응원글이라도 자주 남길 걸 하는 아쉬움이 컸다. 누가 내일이 있다고 함부로 장담할 수 있으랴.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에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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