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과 사진/태국

2008 태국 방콕1 - 머물고 싶었던 강변

by 장돌뱅이. 2012. 5. 23.

오래 전 다녀온 태국, 지각 여행기를 올린다.
기억하기 위해서.
혹은 다시 꿈꾸기 위해서.
------------------------------------------------------------

아내와 다시 방콕에 간다면
반드시 강변의 호텔에 묵자고 약속한 적이 있다.
십여 년에 걸쳐 여러 번 방콕을 갔지만
강변에 묵어본 것은 샹그릴라 하루뿐이었다.


*위 사진 : 몇 해 전 방콕 여행에서 아내와 함께 간 오리엔탈 호텔의 뱀부바

언젠가 아내는
“강변의 오리엔탈호텔의 뱀부바에서 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마시다가
늦은 밤에 나와서 택시를 타고 허겁지겁 시내의 숙소로 돌아오는 식 말고,
그냥 그곳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으로 돌아오는 편안함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나는 저무는 강변 풍경을 좋아한다.
석양의 바다에는 불타는 노을의 어떤 비장함이 있다면
사람 사는 마을을 가까이 흐르는 강변의 노을에는 뭐랄까 ,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새를 위한 둥지처럼
따뜻함과 포근함이 서려 있어 살갑다.


*위 사진 : 지난 방콕여행 사진 중, 챠오프라야 강변의 노을

   왓사켓에서 나와 파쑤먼 PASUMEN 요새 옆의 강변으로 갔다.
   달은 뜨는 것이 좋고 해는 지는 것이 아름답다고 하던가.
   삔까오 다리 위에 걸린 해는 붉은 빛으로 서쪽 하늘을 물들이며 하루를 마감하고 있었다.
   파쑤먼요새 주변을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매끄럽게 저녁 강물 위로 번져나갔다.
   평화로웠다. 아내와 강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손잡고 바라보는 저녁 해에 더하여
   삶에 욕심낼 일이 또 무엇이 있을까.
                                                                     -나의 방콕여행기 중에서-

그래서 선택한 것이 페닌슐라였다.
자체적으로 이름난 바(BAR)는 없지만
바로 강 건너 맞은편에 아내가 언급한 오리엔탈호텔의 뱀부바가 있고
왼쪽으로는 밀레니엄힐튼의 쓰리씩스티 바가 있어서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저녁 무렵 어두워져가는 강을 바라보며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셔도 좋을 것 같았다.


*위 사진 : 27층의 방 그리고 창밖 풍경

무엇보다 여기저기서 보고 들은 페닌슐라 호텔에 대한
찬사가 선택에 주된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내와 내게 페닌슐라는
기대감을 충족할 만큼의 호텔은 아니었다.
아마 너무 큰 환상을 품었던 탓일 게다.

우선 아내와 나의 주 활동공간인 수영장이 작고 평범했다.
주변 환경이 크게 트집 잡을 것은 없었지만
그리 깔끔한 인상을 주지도 않았다.
더럽다는 뜻이 아니라 어딘가 좀 어수선한 느낌이었다.
직원들의 친절은 좋았지만 특별한 차별성은 없어보였다.

그러나 그게 무슨 대수랴.
아내와 둘이서, 태국(에서도) 방콕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런 일들은 사소한 일이 되었다.
실로 먼 길을 날아와 즐기는 태국이었다.
실망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짐을 풀자마자 수영장으로 내려가 늘어졌다.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한가로움이었다.
아내는 수영을 하다가 올라와 책을 읽고
그게 지겨워지면 수박쥬스와 망고밥을 먹으며
수도쿠(SUDOKU)를 풀었다.
나는 그 옆에서 새로 산 카메라를 만지며 놀았다.

수영장 옆의 팊타라라는 태국음식점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호텔 이곳저곳을 산책하듯 걸어 다녔다.
아내를 이곳저곳에 세우고 사진을 찍으며
나는 새 카메라에 익숙해지려고 했다.
아내는 귀찮을 수도 있는 모델 역할을 즐겁게 응해 주었다.

전체적으로 ‘세계 최고’라는 명성에 어울리는
페닌슐라 호텔은 아니었지만
아내와 나는 상관없이 즐거웠고
그곳에서 우리가 보낸 모든 시간 속에
깔려있던 농익은 행복의 향기는
우리를 ‘세계 최고’의 시공간에 있다는
환상으로 빠져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