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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사자 가죽을 두른 나귀

by 장돌뱅이. 2022. 12. 18.

*출처 : 교수신문

교수신문의 온라인 설문 조사 결과 전국 935명의 대학교수들 중 476명(50.9%)이 올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를 선택했다고 한다.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논어』의 「위령공(衛靈公)」편에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 것을 잘못이라고 한다(過而不改, 是謂過矣)”라고 나온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되, 잘못을 감추거나 변명하며 고치지 않는 것을 더 큰 잘못이라 경계하는 말이겠다.「학이」 편에는 "잘못을 저질렀으면 고치기를 꺼려하지 말라(過則勿憚改)"라고도 하였다.

 '과이불개(過而不改)' 다음 순위로는 '욕개미창(慾蓋彌彰)',  '누란지위(累卵之危)', '문과수비(文過遂非) 라는 말이 뒤를 이었다고 한다. 각각  '덮으려고 하면 더욱 드러난다', '계란을 겹쳐 쌓아 놓은 것처럼 위태롭다', '잘못을 잘못이 아닌 것처럼 꾸며 고치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지난 5월 이후 우리 사회의 모습에 어느 사자성어를 대입해도 들어맞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아니 그 모든 순위의 말을 다 합쳐도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묘사하기는 부족하다는 표현이 더 적확하겠다.  스스로를 돌아볼 줄 모르고 부끄러움도 없는 '저들'이 새해에 '다시 잘못을 거듭하지 않을(不貳過)' 것이란 기대는 어리석음과 같은 말로 보인다. 

이솝 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나귀가 사자의 가죽을 둘렀다. 그래서 온갖 짐승들에게 겁을 주고 다녔다. 모두가 그를 두려워하며 달아나자 나귀는 점점 기고만장하였다. 갑자기 한 줄기 바람이 가죽을 벗겨 나귀를 알몸으로 만들었다. 그러자 모두가 달려가 막대와 몽둥이로 그를 두들기기 시작하였다.


다양한 해석과 적용이 가능하겠지만 나는 타락한 권력의 종말을 그린 풍자로 읽었다. '침몰하지 않는' 진실의 바람이 나귀가 치장한 가죽을 벗겼을 때 드러나는 권력의 추악한 실체 그리고 허망한 종말. 가깝게는 불과 5년 전 우리가 직접 확인했던 일이고 다른 나라의 역사를 돌이켜 보아도 흔하게 찾을 수 있는 일 아닌가. 

사람들이 추운 겨울 거리에서 다시 '바람'을 시작하고 있다. 잔인한 현실, 반복된 역사 속에서도  사람들은 결코 지루해하지 않는 듯하다. "내일 새 거품 모여 올지라도 우선, 오늘  할 일은 씻어 내는 일"임을 이미 오래 전부터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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