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사랑한 후에

by 장돌뱅이. 2022. 12. 20.

언제부터인가 친구 부모님들의 부고를 자주 듣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생전에 특별한 추억을 공유한 관계가 아니라면 대개 그럴 때마다 '그러시구나!' 하는 덤덤한 감정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럴  때 누가 '죽음이 일상 가까이 있다'거나 '삶과 죽음이 자연의 섭리'라며 상투적인 경건과 엄숙을 떨기라도 하면 느긋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씩 들려오는 비슷한 또래들의 느닷없는 사망 소식은 그런 '느긋한 긍정'이 잠깐의 착각이거나 허세였음을 곧바로 깨닫게 해 준다. 생의 어느 길목에선가 그들과 만난 인연과 시간이 감정의 골 사이로 애잔하게 파고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이 이제 부모님 세대를 지나 바로 나의 주변까지 왔다는 서늘한 실감 또한 가슴에 묵직하게 내려앉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 초  친하게 지냈던 회사 옛 동료의 죽음이 그랬고, 며칠 전 울산 지인의 죽음이 그랬다. 그리고 하루 전 전해진 대학 동아리 후배의 소식이 그랬다. 단체톡방에 올라온 동영상 속 그의 모습이 생생한 터라 그의 죽음은 놀랍고 생경한 사건으로 다가왔다.

아내와 나는 잠시 지난 시간을 더듬어 보았다. 아주 오래 전 단칸방 신혼을 살던 지방의 거처로 그가 또 다른 후배와 함께 찾아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던가는 세월 속에 바스러져 남아있지 않다. 아마 나의 선동으로 술잔이나 뒤집지 않았을까?  그가 나의 중학교 후배였던 것도 생각났다. 그 뒤로 한의사가 된 그에게 가족들의 진료를 몇 차례 받은 일도. 

"불과 며칠 전 16강에 오를 때까지도 글을 올렸었는데······"
밤늦게 월드컵 결승을 보다가 문득 아내가 그를 다시 떠올렸다.
아내는 몇 해전 자신의 겨레붙이를 떠나보낸 후 주위의 죽음을 그 아픔에 더하곤 한다.

긴 하루 지나고 언덕 저편에 빨간 석양이 물들어 가면
놀던 아이들은 아무 걱정 없이 집으로 하나둘씩 돌아가는데
나는 왜 여기 서 있나
저 석양은 나를 깨우고 밤이 내 앞에 다시 다가오는데

이제 잊어야만 하는 내 아픈 기억이 별이 되어 반짝이며 나를 흔드네
저기 철길 위를 달리는 기차의 커다란 울음으로도 달랠 수 없어
나는 왜 여기 서 있나
오늘 밤엔 수많은 별이 기억들이 내 앞에 다시 춤을 추는데

어디서 왔는지 내 머리 위로 작은 새 한 마리 날아가네
어느새 밝아 온 새벽하늘이 다른 하루를 재촉하는데
종소리는 맑게 퍼지고
저 불빛은 누굴 위한 걸까 새벽이 내 앞에 다시 설레이는데

-전인권, 「사랑한 후에」-

남은 가족들에게  혈육 상실의 아픔은 '기차의 커다란 울음'보다도 더 크게 다가오리라.
하지만 치유될 수 없는 그 아픔과 슬픔의 힘으로, 다시 춤을 추는 별들의 기억으로, 다시 오는 새벽의 설렘으로 남아있는 목숨들은 생의 시간들을 힘을 내서 살아내야 하는 게 또한 의무일 것이다.
떠나는 영혼에게 어서 먼길 훨훨 걸어가시라고 간절히 손을 흔들어 주기도 하면서.
"수고했네. 부디 잘 가시게."

'일상과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 내리는 날  (0) 2022.12.23
꽃바구니  (0) 2022.12.21
A tribute to Lionel Messi  (0) 2022.12.19
사자 가죽을 두른 나귀  (0) 2022.12.18
'그놈'이 왔다 2  (0) 2022.12.1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