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서울에 눈이 많이 왔다.
이번 눈은 특히 충청·전라 쪽에 기록적으로 많이 내렸고 일부 지역엔 아직도 내리고 있다고 한다.
충남 서천에 있는 지인이 강아지 친구들과 함께 눈밭을 산책하는 사진을 보내왔다.
어릴 적 부르던 동요 속 분위기를 불러내는 포근하면서도 아득한 풍경이었다.
하얀 눈 위에 구두 발자국
바둑이와 같이 간 구두 발자국
누가 누가 새벽길 떠나갔나
외로운 산길에 구두 발자국
바둑이 발자국 소복소복
도련님 따라서 새벽 길 갔나
길손 드문 산길에 구두 발자국
겨울해 다 가도록 혼자 남았네
-김영일(작사) / 나운영(작곡), 「구두발자국」-
아내와 시내 고궁 나들이라도 해볼까 들썩거리다 그냥 집에 머물고 말았다.
코로나의 뒤끝인듯 잔기침 잦아들지 않고 매가리 없이 몸이 쳐지기 때문이었다.
커피 대신 아내가 끓인 따끈한 생강차를 들고 건물 사이로 탐스럽게 내리는 눈을 바라보았다.
자고 일어나 무심코 문을 열었을 때 밤새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기적처럼 달라져 있던 모습.
탄성을 지르며 뛰쳐나가던 기억.
눈 때문에 생긴 걱정 따위야 어른들 몫이고 우리들 개구쟁이들에게 눈은 늘 축제였지 않던가. 하굣길에 눈을 굴리기 시작해서 동네 어귀 다다르면 눈덩이는 어느새 우리들 키만큼이나 커져 있곤 했다.
마지막 고비인 언덕길을 오르지 못해 친구들과 서로 품앗이를 해가며 집 앞까지 굴려가서 대문 옆에 거대한 눈사람을 만들었다. 눈덩이가 클 때는 들어 올릴 때 집안 어른들의 도움까지 받아야 했다.
지금 손자친구가 나의 오래전 그 시절을 지나고 있다. 내가 할 일은 그 옛날 어른들이 힘을 써서 나의 눈덩이를 들어 올려주듯 친구와 지치도록 놀아주는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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