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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그놈'이 왔다 2

by 장돌뱅이. 2022. 12. 16.

결국 나에게도 '그놈'이 왔다.
아내의 감염 확정 후 이틀만이었다. 어차피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그동안 '놈'이 변이를 거듭한 덕에 이제는 걸려도 가벼운 감기 몸살 정도라고 하더니 내 경우는 아니었다. 처음엔 몸이 찌뿌둥한 정도여서 구청에서 전화가 왔을 때만 해도 "축하 전화까지 주시니 감사합니다. 꽃다발은 사양하겠습니다"하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는데 그로부터 하루가 지나자 몸의 곳곳이 쑤셔대기 시작했다. 매일 저녁 손자친구와 영상통화로 수수께끼를 주고받는 시간이 빨리 끝났으면 하고 바라기는 처음이었다.

음식맛이 세밀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처음 경험하는 증상이었다. 입맛을 돋우기 위해 몇 가지 음식을 만들고 딸아이네가 보내준 고기를 구워 먹기도 했지만 입에서 느껴지는 맛은 짜다 싱겁다의 두 가지 맛뿐이었다. 김치는 종류를 불문하고 짠지를 먹는 거 같다고 아내는 말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특히 먼저 시작한 아내의 증상은 많이 좋아졌지만 입맛은 여전히 돌아오고 있지 않다. 동호회의 한 사람은 코로나를 앓고 난 뒤에 한동안 무기력증에 빠져서 평소에 좋아하던 사이클링이나 그림 그리기 등 어느 것도 하지 않은 채 한동안을 지냈다고 했다. 참으로 요상한 놈의 병이다.

책을 읽는 것도 집중이 되지 않아 덮어 놓고 지내다 증상이 조금 호전되면서 짧은 시 몇 편씩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송경동의 시집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에 코로나 관련한 시가 있었다. 

코로나19로 국가봉쇄령이 내려진
인도 뉴델리 외곽
인력거꾼 아버지와 세 살던
열다섯 소녀 조티 쿠마리

정지된 세상 따라 인력거도 멈추고
교통사고로 다리마저 다쳐 누운 아버지
세를 내지 않으면 쫓아내겠다는 집주인
수중에 남은 돈은 한화로 삼만 삼천원

아빠, 고향으로 가자고
남은 돈 털어 분홍색 자전거 한대 사고 나니
수중에 남은 건 물 한병
그렇게 자전거 뒤에 걷지 못하는
아빠를 태우고 걸식을 하며
천이백 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달린 소녀

그 소녀와 사내에게
제 몫의 물 한병
밥 한공기 덜어준 이웃들이 함께 이룬
경이로운 삶의 여정
사랑과 연대라는 가장 오래된 백신

- 송경동, 「가장 오래된 백신」-

경기장마다 가득 메운 월드컵 관중들의 함성이 요란하고 굳게 걸어 잠갔던 나라 간 여행 장벽이 풀리면서  '이젠 코로나의 공포에서 벗어나  온전한 일상이 회복되었구나'하고 느끼면서도 세상에 전쟁과 폭력, 차별과 분리, 분열과 왜곡 또한 여전한 것을 보면 '온전한' 일상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보게도 된다. 거기에 '사랑과 연대'라는 말은 진부하거나 생뚱맞아 보이기까지 한다.

오늘 저녁, 이태원에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젊은 넋들을 위한 49재가 있다고 한다.

아내와 함께 가서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고 꽃 한 송이라도 놓고 오려고 했는데 코로나 격리 기간이라 갈 수 없게 되었다. 오늘 묵주기도는 그들을 위해 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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