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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영화 <<다음 소희>>

by 장돌뱅이. 2023. 3. 31.

2017년 1월, 18살의 어린 소녀가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직업계 고교 애완동물학과 3학년이었었던 소녀는 인터넷 회사 고객센터에서 현장실습 중이었다.
회사에서 그는 인터넷해지를 원하는 고객을 상담하고 마음을 돌려야 하는 이른바 '해지방지' 업무를 하는 전화상담원이었다. 불만 가득한 고객의 폭언을 정면에서 받아야 하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만큼 (혹은 그보다) 힘든 것은 '콜수'와 '상품판매'라는 회사가 부여한 실적 압박이었다. 제 때에 퇴근할 수 없는 날이 반복되었다. 더군다나 실적을 채워도 회사는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소녀에게 지급해야 할 인센티브를 제때에 주지 않았다. 

영화 <<다음 소희>>는 그런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소희의 죽음을 담당한 형사는 소희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유를 찾아 소희의 직장과 학교와 교육청을 방문한다.
소희가 속했던 모든 조직은 소희의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한 나름의 제도적 ·합리적 이유와 논리를 가지고 있다. 회사는 실습생이라는 법적 제도를 이용하여 가장  싼 임금의 '자원'을 가장 힘든 부서에 배치하는 '효율'을 가질 수 있었고, 학교는 '어쩔 수 없이' 취업률을 고민해야 했고, 교육청은 그런 학교의 생존을 위한 '심사숙고'에 당당했다. 컴퓨터화면과 칠판의 현황판에 가득히 메마른 숫자와 통계가 있을 뿐이었다.
탐문수사를 계속하면서 형사는 점차 소희의 죽음이 '사회적 타살'임을 깨닫고 분노한다.
물론 그런 정의로운 형사는 가상의 존재였을 뿐 영화 밖 현실에선 없었다.

소희 이후에도 뉴스는 '다음 소희'(Next Sohee)를 계속해서 보도했다.
『논어』의 마지막 문장은 "말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없다(不知言 無以知人也)"이다. 사람의 말은 입을 통해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표정과 몸짓 등 모든 것이 자신을 드러내는 언어다. 세상은 '소희'가 죽음으로 표현한 절망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아니 외면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주 자주 사람 이외의 허구와 허상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 몇번인가 전화상담원에게 화를 낸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며칠 전에는 가전제품 수리를 받으려고 A/S센터에 전화를 했다가 또 그 못된 버릇이 나오려고 했다.
낌새를 눈치를 챈 아내가 옆에서 내 귀에다 조용히 말했다.

"지금 전화를 받는 사람이 소희야." 
나는 목소리를 낮추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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