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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봄봄봄 꽃꽃꽃

by 장돌뱅이. 2023. 4. 1.

발길 가는 곳마다 봄 봄 봄이고 눈길 닿은 곳마다 꽃 꽃 꽃이다.
마치 무수한 봄들이 여기저기 모여 한꺼번에 터트리는 함성 같다.

예년을 웃돈다는 기온에 날씨도 화창하여 나들이  욕심을 부추긴다. 온몸의 근육도  덩달아 근질거린다. "이런 날 집에 머무는 것은 죄악!"이라고 카톡으로 주위에 선동질을 하고 아내와 길을 나선다.

이미 아파트 화단에 동백꽃이며 목련이며 벚꽃이며 산수유가 만개했다. 며칠 전  읽은 한 소설에 "매화와 동백이 시들 무렵 연노란 산수유가 들판에 봄빛을 불러오고, 아련한 연노랑 빛이 성에 차지 않는다 싶을 즈음 진달래가 산등성을 벌겋게 물들이고, 그 꽃들이 죄 사라진 뒤에야 봄볕에 지친 보랏빛 오동이 숨을 헐떡이며 커다란 꽃잎을 축 늘어뜨려 여름을 알렸는데 요즘은 온갖 꽃들이 동시다발로 피어난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다. 

봄엔 봄 아닌 것이 없다. 구태여 먼 길을 가지 않아도 집에서 가까운 강변과 공원에도 봄은 충만하다.
발걸음을 더디게 하고 바쁘게 오고 가는 계절에 잠시라도 눈길을 주어 볼 일이다.
최영미 시인의 말대로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지 않던가.
우리네 인생처럼.

한강변 산책길에 만난 개나리와 벚꽃. 
해마다 봄이면 평소에는 잘 가지 않던 이 길을 따라 산책을 한다.  

 '저 밖에는 봄이 와 있는데 우리는 겨울 안에서 머무적거리고 있다'고 탄식한 사람이 누구였던가.  
서울숲에도 봄은 대세다. 지난 겨울을 생각하면 마술 같다. 권태와 지루함이 함께 할 수 없는 계절이다. 

응봉산 절벽에도 개나리가 가득하다. 

눈 내린 겨울과 단풍의 가을에만 가보았던 선릉과 정릉.
봄에 걷는 것으로 퍼즐의 한 조각을 맞춘 기분이다. 말만 들어도 머리가 번잡해지는 서울 강남 한 복판에  이토록 조용한 공간이 남아 있는 것은 조상이 베푸는 음덕(蔭德)이다.  

대숲에 자리잡은 그윽한 공관(公館)
매화 한그루 창 앞에 피어 있네

우뚝한 모습으로 눈 서리 견디면서
조용하고 깨끗하게 티끌 먼지 벗어났네

한해가 다 지나도 별뜻 없어 보이더니
봄이 오니 스스로 꽃 활짝 피우네

그윽한 향기가 속기(俗氣)를 벗었으니
붉은 꽃만 사랑스런 거 아니로구나

(窈窈竹裏館   牎前一樹梅
 亭亭耐霜雪   澹澹出塵埃
 歲去如無意   春來好自開
 巖香眞絶俗   非獨愛紅腮)

-  정약용,「붉은 매화(賦得堂前紅梅)」-

어디 꽃과 향기뿐이랴.
거기에 더해지는, 아내와 거니는 한가로운 시간은 언제나 삶의 한 절정이다.
그리고 이럴  땐 백수도 행운이고 '특권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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