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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화상첨화(花上添花)

by 장돌뱅이. 2023. 4. 5.

어젯밤 함께 잠자리에 누워 첫째 손자친구와 BTS의 노래를 들었다.
친구가 먼저 잠이 들어 휴대폰의 유튜브를 닫자 어디선가 토닥거리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일까? 컴퓨터라도  끄지 않은 것일까? 방 안을 둘러보다 빗소리라는 걸 알게 되었다.
빗소리가 아파트 방안까지 파고드는 걸 보니 제법 세차게 내리는 것 같았다.
커튼을 거두자 어두운 유리창에 맺혀 있는 빗방울이 보였다.
극심한 봄가뭄이라던데 기왕 내릴 거면 넉넉히 내렸으면 싶었다.

아침이면 아파트 정원과 산책길이 떨어진  꽃잎으로 가득해지겠지만 조지훈 시인의 말대로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할 수야 있으랴. 지는 꽃은 져도 피는 꽃은 연이어 피어날 것이다. 진달래, 철쭉, 복사꽃, 살구꽃, 제비꽃, 민들레꽃, 씀바귀꽃, 엉겅퀴꽃, 얼레지꽃 외에 이름만 들었지 실제로 보지 못한 코딱지꽃, 좁쌀밥꽃, 며느리배꼽꽃까지, 넘쳐나는 꽃들로 계절은 금상첨화 (錦上添花) 아닌 화상첨화(花上添花)를 이룰 것이다.

화단과 들에 피는 꽃들만 꽃이 아니라 내겐 아침마다 소란과 부산을 떨어야 등교를 하고 등원을 하는 두 명의 손자친구도 꽃이다. 

손자 1호

어제 아침 큰 손자는 등굣길에 여자친구(?)를 만났다.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부터 나는 별안간 손자의 안중에 없는 사람이 되었다. 둘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걸어갔다. 평소에는 교문 안에 들어서서 학교 현관문에 들어서기까지 세 번 정도는 돌아보고 손을 흔들었지만 어제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도 둘은 다시 만났다. 안타깝게도(?) 비와 우산 때문에 손을 잡지 못하고 걸어갔다.
나는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두 송이 예쁜 꽃이 흐뭇하여 뒤쳐져 천천히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손자 2호

요즈음 들어 모든 말에 부쩍 "싫어"라는 말을 많이 쓰는 2호의 억지도 꽃이다.
함께 노는 불자동차 프랭크와 구급차 앨리스와 타요버스와 경찰차 폴리와 구출해내는 곰돌이 푸는 물론, 거실 마루는 평야가 되고 소파는 절벽이 되며, 침대는 산이 되는 2호의 상상은  '화상첨화'다.

친구들의 귀가를 기다리며 그들의 모습을 가만히 떠올리는 시간 또한 꽃으로 쌓인다.
그래! 서둘러(?) 늙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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