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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주꾸미를 먹고 난 후

by 장돌뱅이. 2023. 4. 8.

'봄 주꾸미 가을 낙지'라고 하던가. 머리에 '쌀(알)'이 든 봄철 주꾸미가 제맛이라는 뜻이겠다.

은퇴 후 바다낚시에 빠진 한 친구는 '주꾸미는 가을에만 낚으러 간다'고 했다. 
'알쭈'는 안 잡는다는 것이었다.  '알쭈'라는 말이 재미있어서 웃었다.

(*이전 글 참조 : 
주꾸미 이야기)

주꾸미 이야기

주꾸미는 낙지, 문어처럼 머리에 발이 달려 두족류에 속한다. 주꾸미의 머리는 사실 몸통이다. 그 안에 소화기관과 내장, 아가미, 생식기도 들어있다. 여덟 개의 다리 한가운데에 입이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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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겐 주꾸미는 봄철 음식이다. 끓는 물에 살짝 데치면 쫄깃한 식감이 살아난다.
보랏빛이 감도는 탱탱한 다리의 모습이 봄꽃처럼 예쁘다.
이것을 새콤달콤한 양념고추장이나 고소한 간장소스와 데쳐 먹는다.
비오는 날에는 주꾸미 수제비도 제격이다.

주꾸미미나리무침
주꾸미양배추깻잎샐러드

세상에서 제일 미련한 것은 주꾸미들이다
소라껍질에 끈 달아 제 놈 잡으려고
바다 밑에 놓아두면
자기들 들어가 알 낳으면서 살라고 그런 줄 알고
태평스럽게 들어가 있다
어부가 그 껍질을 끌어올려도 도망치지 않는다
파도가 말했다
주꾸미보다 더 민망스러운 족속들이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만든 소라고둥 껍질 속에 들어앉은 채 누군가에게
자기들을 하늘나라로 극락으로 데려다 달라고 빈다

- 한승원, 「주꾸미」-

한승원의 「주꾸미」는 맛난 주꾸미에 대한 '모독'이다.
 하지만 주꾸미를 먹고 난 뒤 넷플릭스에서 본 <<나는 신이다>> 속 사람들에 대한 비유라면 적절하다. 주꾸미만도 못한  탐욕스러운 인간들이 만든 허접한 사이비 교리와 조직의 '소라고둥 껍질' 속에 갇혔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동정과 분노가 인다. 한편으론 '이 영악스러운 세상에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하지?' 하는 불가사의한 생각도 든다. 

그러나  '악의 평범'처럼 피해자들도 평범하다고 한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사이비 종교의 터무니 없는 논리와 조직을 맹신하고 헌신할 만큼 판단력이나 지적 수준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말이겠다.

종교가 아닌 정치와 이념의 상황을 대입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사람들은 종종 이것 아니면 저것, 나 아니면 너, 아군 아니면 적군으로 세상일을 구분짓고 판단하지 않는가.
사이비(似而非)는'비슷하지만 근본적으로 아닌 것(바르지 않은 것)' 을 뜻한다. 어디에서나 자신의 신념과 행동을 끊임없이 객관화하여 돌아보는 냉철한 시비지심(是非之心) 이 필요하다. 

 <<나는 신이다>>에 나오는 교주들은 저마다 메시아(예수)거나 메시아의 대리임을 자처했다. 그런 것이 단지 우연한 개인적인 일탈이고 이단의 행위일 뿐 것일까? 기성 교단은 아무런 관련도 책임도 없는 것일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전 글 참조  :
 할리우드에서 만난 '불신지옥'

할리우드에서 만난 '불신지옥'

회사일로 엘에이를 다녀왔다. 손님과 또 다른 손님을 만나는 사이가 좀 길어 시간을 죽일 겸 지하철 METRO를 타고 할리우드로 갔다. 엘에이의 메트로에는 특이한 점이 있었다. 티켓 검사대가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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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부활절이다. 오래간만에 성당 미사에 나가 마음 속으로 그분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물어보고 싶다. 나는 아직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는 수준의 냉담자이다.
하지만 질문과 의문이 믿음을 굳건히 하고 어저면 우리를 구원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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