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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이 봄을 노래 부르세 2

by 장돌뱅이. 2024. 3. 29.

고등학교 시절 나이가 지긋한 한 선생님이 말했다.
"요즘 노래는 낭만이 없어. '그건 너 그건 너' 삿대질할 것 같지 않나,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  하면서 악을 쓰질 않나?"
한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우리 중 하나가 물었다.
"그럼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낭만이 들어간 노래는 어떤 겁니까?"

선생님은 대답을 노래 한 소절로 대신했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 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대중가요래도 뭐 최소 이 정도는 되야지!"

남으로 오는지, 남에서 오는지 지금 봄바람은 하루가 다르게 봄꽃의 등을 떠밀고 있는 것 같다. 
산책길에 만난 개나리는 하루 전 강변에서보다 더 노랗게 호숫가를 물들이고 있었다.

목련나무는 솜뭉치 같이 피어난 꽃송이들을 달아 가지가 휘어질 듯하고 그 사이로 근데군데 연분홍 진달래가 환하게 피어 있었다.

나는 운전 중에 무료해지거나 졸음이 올 것 같으면 음악을 바꾸어 노래를 따라 부르곤 한다.
그럴 때 부르는 노래는 대체로 뽕짝이다. 아예 핸드폰 폴더 속에 별도로 구분해서 저장을 해가지고 다닐 정도다. 아내는 도대체 이런 옛 노래를 어떻게 이렇게 많이 알고 있냐고 놀란다.
듣도보도 못한 노래의
가사를 3절까지 외우는 능력으로 법조문을 외웠으면 요즘처럼 검사시대에 어깨에 힘깨나 주는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을 거라며 놀리기도 한다. 

왜 어디서 배웠지? 딱히 어떤 계기나 기간이 떠오르지는 않지만 아마 주로 군대에서 배운 것 같다. 
<용두산 엘레지>라는 노래를 구성지게 불렀던 부산 고참에게 사사한(?) 적도 있으니.

딸아이는 어렸을 적 운전 중에 내가 부르는 뽕짝을 싸구려 취급하며 좋아하지 않았다.
노래 자체만이 아니라 그런 노래를 부르는 아빠의 모습도 고리타분해 보인다고 타박을 했다.
당시 별명이 '강타부인'일 정도로 학교에서도 유명짜했던 딸아이에게 노래는 오로지 '넘사벽'의 H.O.T뿐이었다. 딸아이와 나는 차 안에서 누구의 노래를 듣느냐로 가끔 실랑이를 벌여야 했고 아내가 나서 딸아이 쪽으로 편파적인 중재를 내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마 '낭만'을 고집하던 옛 선생님을 닮은 억양으로 투덜거렸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뽕짝이 신세대의 노래였다니까. 요즈음 노래는 말이야 ······"
물론 나의 말에 딸과 아내는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혹시 여러분도 그렇지 않은가? 꿈 많은 20대 시절에는 트로트를 싫어하다가도, 막상 나이가 삼사십 고개를 넘어가면서부터는 새삼 트로트의 절절한 슬픔을 이해하게 되지 않는가? 나이가 들수록 그리고 가난한 사람일수록 이런 트로트의 정서에 익숙한 것은, 고생고생 노력하며 살아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세상을 살아보지 못하는 인생의 쓴맛을 이미 알아버린 까닭일 것이다.

- 이영미,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 중에서 -

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의 <봄날은 간다>는 내가 좋아하는 뽕짝 중에 하나다.
봄노래 하면 아내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나 로이킴의 <봄봄봄>을 선호하지만 내게는 <봄날은 간다>가 최소 동등하거나 비교우위다. 1953년에 처음 백설희가 부른 이래 여러 가수가 불렀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연분홍치마, 성황당, 청노새, 앙가슴, 신작로 ······
생활 속에서 익숙하지 못한 단어들과 역마차(달구지가 더 낫지 않았을까?)처럼 뜬금없는 단어도 나오지만 가사를 읽거나 노래를 따라부르다 보면 조금  청승스러워지면서도 나른하고 아련해진다.
봄날이 가고 또 무엇이 갈까
 ······
아무래도 난 이미 오래 전에 옛 선생님을 닮은 '라떼족' 반열에 올랐던가 보다.


* 뽕짝은 아니자만 김윤아가 부른 같은 제목의 다른 노래도 내게는 막상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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