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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내겐 매우 어려운 우리말 2

by 장돌뱅이. 2024. 6. 2.

외국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자 <한국어교원양성과정>에 등록을 하여 공부한 적이 있다.
그걸 바탕으로 미얀마 이주노동자에게 우리말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때 절절하게 느낀 것은 우리말을 제대로 한다는 게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너무 어려워서 한국어가 모국어인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제2외국어라면 절대 공부하지 않았을 거라며 동료들과 웃곤 했다.

코로나 전 함께 한국어를 공부하던 미얀마 이주노동자들

나 자신이 헷갈려하는 것도 많은데(아니 몰라서 틀리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우리말이 생소할 외국인들에게 어떻게 해야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까 매번 고민을 해야 했다.

생각나는 예를 들면 대충 이런 것들이다.

*"누가 학생이에요?" 하고 물었을 때 "철수  학생이에요"라는 대답은 맞지만 "철수학생이에요"는 틀리다. 우리는 모국어라 무심히 사용하지만 외국인들에게 '은 는 이 가'는 어렵고 이해시키는 것도 힘들다. 게다가 "철수는 학생이에요?"라는 물음에는 "네, 철수 학생이에요"는 맞지만 "네, 철수 학생이에요" 하면 틀리지 않는가.

또한 외국인들은 우리말의 발음에서 거센소리와 된소리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다.
 'ㄱ, ㄷ, ㅂ, ㅈ'이 초성에 있는 경우 외국인은 'ㅋ, ㅌ, ㅍ, ㅊ'으로 들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감사합니다'를 '캄사합니다'라고 '김치'를 '킴치'라고 말한다.
된소리는 더욱 어려워서 굴과 꿀이, 담과 땀이 똑같은 단어로 들릴 수 있다고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천 개의 언어 중에서 ㅅ과 ㅆ을 구분하여 말하는 언어는 한국어와 아프리카계 언어 중 하나뿐이라고 하던가.
'자다=차다=짜다'가 같은 말로 들린다고 생각하면 쉬운 문제가 아니다.

'방금'과 '금방'도 어려운 말이었다. 뜻도 사용법도 같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경우도 있었다.
'금방 갈게'라고는 해도 '방금 갈게'라고는 하지 않는다. '금방'은 과거형, 미래형에 두루 쓰지만 '방금'은 미래형에 잘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전 글 참조 : 

 

내겐 매우 어려운 우리말

은퇴를 하고 무엇을 할까 아내와 의논을 했다. 아내는 "외국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보는 게 어떨까?" 하고 권했다.직장 생활의 대부분을 해외영업으로 보냈고 외국에서 10년 가까이 살기까

jangdolbange.tistory.com

우리말(한국어)을 공부하면서 '이 말이 맞나?' 한번 의심이 들면 『국립국어원표준국어대사전』 꼭 찾아보는 버릇이 생겼다.하지만 찾아볼수록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경우도 많다.

최근에 옷을 입으며 웃도리가 맞을까 아니면 윗도리가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아보니 '윗도리'가 맞았다. 반대말로 '아랫도리'가 있을 때처럼 위'와 '아래'의 대립이 있는 경우 '윗-'을 쓴다고 한다. 윗눈썹, 윗니, 윗목, 윗수염, 윗입술 같은 말이 그런 경우다.
그러니까 '윗어른께 공손해라'는 잘못된 말이라는 것이다. 
'아랫어른'이라는 반대발이 없으므로
'웃어른'이라고 해야 한다.
같은 이치로 '
웃동네'는 안되고 '윗동네'가 된다.

뭐 여긴까진 괜찮았다. 그런데 조금 더 들어가면 이게 간단치 않다.
예외 없는 규칙은 없다고 했던가(There is no rule but has exception).
아래옷의 반대말로 쓸 때는 '윗옷'이 맞지만 '맨 겉에 입는 옷'이라는 뜻일 때는 '웃옷'이라고 써야한다.
(아랫도리에는 사이시옷이 들어가지만 아래옷에는 안 들어가는 것도 두통을 야기시킨다.)

게다가 위짝, 위층, 위채, 위턱처럼 된소리나 거센소리 앞에서는 '위-'라고 해야 한다.

젓가락은 되는데 숫가락은 안 되고 숟가락이 맞고 암소의 반대말은 숫소가 아니라 수소이다.
삼겹살에 오돌뼈는 없고(틀리고) 오도독뼈가 있다. 
오뚜기표 참기름은 고유명사로 이해해 주어도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건 오뚝이가 맞다.

매일 아침 큰손자에게 간단한 아침 인사를 겸한 문자를 보내는데 어제는 '6월의 시작'이라고 쓰면서 '유월'로 읽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손자는 "왜요?" 물었지만 그게 규칙이라고 할밖에 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월(月)은 '일월, 이월, 삼월'이라고 하지, '하나 월, 두 월, 세 월'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도, '한 해(年), 두 해, 세 해'라고 하고 ' 일 년, 이 년, 삼 년'라고 하는 것도 신기하고 재미있지만 설명이 어렵다.
'일 년, 이 년'은 띄어쓰지만 '한해살이, 두해살이'와 '일월, 이월'을 붙여쓰는 것은 더 그렇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알게된 말이 있다.
바삭하고 부드러운 과자, 웨하스는틀린 말이고 웨이퍼(wafer)가 맞는 말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wafer의 복수형 wafers를 웨하스로 읽으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국립국어원표준국어대사전』에도 '웨이퍼'로 올라있다.
(웨이퍼 : 양과자의 하나. 밀가루, 설탕, 달걀, 레몬즙 따위를 섞어 살짝 구운 다음, 크림이나 초콜릿을 두 쪽 사이에 끼워서 만든다.)
그런데 가게에 가서 '웨이퍼 어디 있어요?' 하고 물으면 알아 듣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실생활 속 언어와 사전 속 언어의  격차 또는 딜레마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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