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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흰구름 다할 날 없는 곳

by 장돌뱅이. 2024. 6. 4.

요새 하늘이 참 예쁘다. 하늘이 예쁘니 구름도 예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예년에 비해 올봄엔 미세먼지도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아내는 산책 중 하늘을 보며 자주 말한다.
'하늘이 진짜 파랗다!'
'구름도 정말 깨끗하지!'
그런 소소한 것들에 크게 감탄하는 아내가 하늘과 구름만큼이나 맑아 보인다.

하늘에
흰 구름을 보고서
이 세상에 나온 것들의
고향을 생각했다.

즐겁고저
입술을 나누고
아름다웁고저
화장칠 해 보이고,

우리,
돌아가야 할 고향은
딴 데 있었기 때문······

그렇지 않고서
이 세상이 이렇게
수선스런
까닭이 없다.

-  신동엽, 「고향」-

파란 하늘에 뜬 눈부시게 하얀 구름
······
맑고 따뜻하면서 성스럽고 때로 외경스럽기도 하다.
세상이 수선스럽게 느껴지는 날이면, 가끔은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과 우리 자신의 모습과 함께 거기에 비춰보기도 할 일이다.
그러다보면  돌아가거나 도달해야 할 어떤 궁극의 근원 같은 것이 떠오르지 않을까?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가 말한 '흰 구름 다하지 않는(白雲無盡時)'  곳이나, '앉아서 구름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는 강물 다한 곳' 같은······

중년에 자못 도(道)를 사랑하여 
늙마에 남산 언저리에 집을 두고,
흥 일면 번번이 홀로 가고
좋은 일은 부질없이 나만 아나니,
가다가 강물 다한 곳에 이르러
앉아서 구름 일어나는 것을 바라본다.
어쩌다 숲 속 노인을 만나면
담소하며 돌아갈 때를 잊고.

(中歲頗好道   晩家南山陲
 興來每獨往   僧事空自知
 行到水窮處   坐看雲起時
 偶然値林叟   談笑無還期)

함께 시를 읽고나서 아내가 놀렸다.
"당신, 이러다 조만간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올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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