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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밥은

by 장돌뱅이. 2024. 5. 31.

콩나물밥
무밥
열무김치비빔밥
꼬막비빔밥
신김치콩나물죽
가지된장구이덮밥

귀 떨어진 개다리소반 위에
밥 한 그릇 받아놓고 생각한다.
사람은 왜 밥을 먹는가.
살려고 먹는다면 왜 사는가.
한 그릇의 더운 밥을 얻기 위하여
나는 몇 번이나 죄를 짓고
몇 번이나 자신을 속였는가.
밥 한 그릇의 사슬에 매달려 있는 목숨.
나는 굽히고 싶지 않은 머리를 조아리고
마음에 없는 말을 지껄이고
가고 싶지 않은 곳에 발을 들여놓고
잡고 싶지 않은 손을 잡고
정작 해야 할 말을 숨겼으며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했으며
잡고 싶은 손을 잡지 못했다.
나는 왜 밥을 먹는가, 오늘
다시 생각하며 내가 마땅히
지켰어야 할 약속과 내가 마땅히
했어야 할 양심의 말들을
파기하고 또는 목구멍 속에 가두고
그 대가로 받았던 몇 번의 끼니에 대하여
부끄러워한다. 밥 한그릇 앞에 놓고, 아아
나는 가롯 유다가 되지 않기 위하여
기도한다. 밥 한 그릇에
나를 팔지 않기 위하여.

- 장석주, 「밥」-

밥은 어떤 술어와도 다 잘 어울린다고 한다.
밥은 맛있다. 밥은 고귀하다. 밥은 따뜻하다, 처럼.
또 밥은 비루하고, 슬프고, 아픈 것이라 해도 들어맞는다.

젊어 회사일로 먼 나라를 떠돌 때 자주 마음과 다른 표정을 짓고  '마음에 없는 말을 지껄이며' 밥을 먹었다. 그럴 때 밥은 화려했지만 고귀하지 않았고 따뜻하지도 않았다. 긴장과 피곤함을 더 할 뿐이었다.
맛은 허공으로 흩어지듯 느낌 없이 혀끝에서만 걷돌았다. 

이제 백수(白手)의 노년이 되어서 서툰 솜씨로 밥을 지어 아내와 나눈다.
밥은 소소하고 투박해도, 정갈하고 담백하며 고즈넉하고 오붓하고 넉넉하여 은혜롭다.
비로소 맛은 핏줄 깊은 곳으로 스며들며 영혼을 고양시키는 축복이 된다.

어떤 밥을 먹는가는 어떤 삶을 사는가와 같은 뜻이다.

쌀국수
열무김치국수
볶은호박고명잔치국수
콩나무양배추비빔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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