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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먹고 싶은 걸 먹는다는 것

by 장돌뱅이. 2024. 6. 16.

어느 날부터 하굣길 마중을 가면 손자저하가 앞장 서 내 손을 이끌고 가는 곳이 생겼다.
학교 앞 잡화점이다. 그곳에서 저하는 '콜팝'을 고른다.
같이 온 친구도 그걸 고른다. 아마 학생들 사이에 인기 식품인 듯하다.

콜팝은 '콜라 + 팝콘 치킨'의 약자이다. 컵에 콜라를 담고 그 위에 구슬만한 닭튀김을 얹어 나온다.
콜라는 빨대를 통해 먹게 되어 있어 기능적이다.
닭튀김이 어떤 맛일까 궁금해 한 개만 달라고 사정해서 먹어보니 시큼한 게 별 맛이 없었다.
그런데도 저하는 친구와 마냥 흡족해 했다.


근처에 분위기 좋고 깔끔한 카페가 있어 그곳에서 다른 걸 먹자고 해보기도 했지만 매번 저하의 콜팝 사랑을 이길 수 없었다. 집에 엄마 아빠가 사놓은 더 깔끔한 맛의 과자와 음료가 있는데도 그랬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국민학교' 시절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오색 쫀데기를 좋아했다.
지금처럼 집에 가도 맛난 과자는 없고 대신에 고구마, 옥수수 같은 '1차 농산물'만 있던 시절이어서 하굣길에 문방구를 그냥 지나치기는 괴로운 일이었다. 

문방구뿐만이 아니었다. 명절 뒤끝이 아니면 돈이 있을 리도 없는 주머니 사정에 번데기, 달고나, 아이스께끼, 삶은 소라고둥, 풀빵, 오뎅, 아이스께끼, 오징어다리, 삼각비닐봉지에 든 원색의 단물 따위의 '천하일미'가 늘어선 학교 앞 골목길을 빠져나오는 건 가히 극기훈련에 가까운 일이었다.

선생님이나 부모님은 '불량식품'에 대해 자주 주의를 주었지만 우리는 그까짓 대장균쯤이야 너끈히 소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 배탈이 난 적도 없기에(있어도 대수롭지 않게 여서서) 귀에 담아 두지 않았다. 

그런 건 시험지에서 정답을 고를 때나 필요한 책 속의 고리타분한 말이었을 뿐이다.

저하의 콜팝사랑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맛있게 먹으면 칼로리도 제로라고 어른들이 자기 합리화를 하듯이, 맛있게 먹으면 그게 집 냉장고 속 고급과자보다 낫다고 나는 생각한다.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부잣집 어린 딸아이도 짜파구리를 좋아하지 않았던가.
어른인 엄마는 거기에  한우 채끝살을 얹은 것으로  사랑을 표시하고 은근히 재력을 과시했을 뿐이다. 

(여담이지만 <<기생충>> 에서 짜파구리를 영어로 번역할 때 적당한 단어가 없어 고심 끝에 "람동(Ramdon)"으로 했다고 한다. 라면과 우동을 합친 말이다.)


17세기 영국의 정치인이자 탐험가, 시인인 월터 롤리는 "부자는 먹고 싶을 때 먹고 가난한 사람은 먹을 수 있을 때 먹는다"고 했다지만 나는 먹고 싶을 때 먹고,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을 때 먹는다.
부자라서가 아니라 백수라서 그렇다.
점심시간이니 먹는 것이 아니라 배고프니 먹고, 거래처 손님의 입맛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걸 먹는다. 안 먹고 싶을 땐 안 먹는다. 마실수록 안 취하려고 긴장하며 눈을 부릅떠야 하는 자리가 아니라 아내와 두서없는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어서 술을 마신다. 

손자저하의 군것질을 보고 횡설수설하다 너무 멀리 온 느낌이다.
누구나 '먹고 싶은 걸 먹고 싶을 때 먹어야 한다'는, 그것도 바로, 지금, 그렇게 하자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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