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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내겐 매우 어려운 우리말 3

by 장돌뱅이. 2024. 6. 12.

'네 살배기?'
'네 살박이?' 
생각 없이 '네 살배기'로 쓰다가 갑자기 어느 게 맞는지 헷갈렸다.
한번 헷갈리면 생각할수록 점점 더 헷갈린다.
학창 시절 시험 볼 때 헷갈리면 고치지 말아야 한다.
이번에도 처음과 다른 걸 '찍었더니' 틀렸다.

'그 나이를 먹은 아이'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는 '-박이'가 아니라 '-배기'가 표준어다.
이외에 '공짜배기', '진짜배기'에도  '-배기'를 쓴다.
대체적으로 '어떤 것이 들어있거나 차 있음', '그런 물건'을 뜻할 때 쓰는 것 같다.
네 살배기 우리 손자 저하!
밤에 헤어질 때면 매번 싫다고 안 된다고 떼를 쓰며 울어서 안쓰럽다.

마술동호회의 손재주가 뛰어난 한 회원이 만들어준 종이 점박이(?) 인형.

점박이 강아지? 점배기 강아지?
점박이가 표준어다.
'-박이'는 '금니박이'처럼 무엇이 박혀 있는 사람, 짐승, 또는 그런 물건을 뜻할 때 사용한다.

참깨소스 차돌박이 샐러드
차돌박이 영양부추 샐러드

차돌처럼 희고 단단한 부분이 박혀 있는 소고기 부위도 '차돌배기'가 아니라 '차돌박이'다.
기름기는 좀 많지만 고소한 맛을 내서 자주 샐러드로 해 먹는다.
야채가 기름기를 중화시켜 주리라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나를 안심시키면서.

아내는 내가 담근 '오이소박이'를 좋아한다. '오이소백이'가 아니다

30여 년 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30여 년 전 회사 일로 주재한 인도네시아는 우리 가족에게 첫 외국이자 외국 생활이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유튜브가 있던 시절이 아니어서 아는 레코드 점에서 카세트테이프에 음악과 노래를 담아서 갔다. 그중에 이동원과 박인수가 부른 노래 <향수>가 있었다.

아내는 이국생활에 즐거워하면서도 문득문득 향수를 느끼는 듯했다.
저녁에 음악을 틀어놓고 맥주를 마시다 이 노래가 흘러나오면 눈물이 그렁그렁해지곤 했다.
그럴 때면 나도 가만히 노래를 따라 부르며 우리가 멀리 와있구나 하는 느낌에 빠져 들었다.
울적한 느낌과는 다른, 뭐랄까 두고 온 것에 대한 그리움 같은 감정이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이럴 때 '얼룩백이'는 비표준어다.
'얼룩배기'도 '얼룩박이'도 아닌 '얼룩빼기'가 표준어다.


그런데 얼룩얼룩한 점이나 무늬, 혹은 그런 무늬가 있는 짐승이나 물건은 '얼룩이'라고 하지 않고 '얼루기'를 표준으로 삼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얼룩빼기와 얼루기는 어떻게 다른 것인지 모르겠다.

아내에게 이걸 OX 문제로 냈다. 처음엔 관심을 보이더니 손사래를 쳤다.
"그런 건 당신만 알고 필요할 때가 있으면 알려줘. 어지러우려고 한다."

이 세상에 쉬운 언어는 없다. 우리말도 어렵다.
한국에 태어나서, 한국어가 모국어라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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