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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솟쩍다 솟쩍다

by 장돌뱅이. 2024. 6. 14.

천방지축 여기저기 이곳저곳에 얼굴을 디밀고 다니던 대학 신입생 시절, 어떤 (시 낭송회?) 행사에 참석했는데 본 행사 전  짧은 피아노 연주가 있었다. 본격적인 연주라기보다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모임의 시작을 알리려는 오프닝 순서인 듯했다. 연주가 끝난 후 사회자가 말했다.
"이 곡을 모르시는 분은 없으시겠죠? 연주를 해주신 아무개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더러 들어본 곡이긴 했지만 사실 나는 그 곡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나만 모른다는 자격지심에 옆 친구에게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야, 이 곡 정체가 뭐냐?"
녀석은 다분히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그것두 모르냐? 베토벤 '월광소나타'잖아. "

알고 보니 녀석도 내가 물어보기 전 모임 안내서를 커닝한 것이었다.
녀석과 나는 베토벤도,'월광 소나타도, 베토벤의 월광소나타도 알고 있었지만, 그리고 다방이나 라디오에서 가끔 들어본 음악이었지만, 그 세 가지를 합쳐서는 알지 못하는 수준의 '유유상종(類類相從)'이었던 것이다.

소쩍새도 그렇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로 시작하는 서정주의 시를 모르는 한국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니 그 시를 몰라도 소쩍새란 말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중가요에도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저고리 고름 말아 쥐고서 / 누구를 기다리나 낭랑 십팔 세/
버들잎 지는 앞 개울에서 / 소쩍새 울 때만 기다립니다/
소쩍꿍 소쩍꿍 소쩍꿍 소쩍꿍 / 소쩍꿍 새가 울기만 하면/
떠나간 그리운 님 오신댔어요.   
- <낭랑18세> -

석양을 바라보며 한숨짓는 개나리처녀 / 소쩍새가 울어 울어 내 얼굴에 주름지네
- <개나리처녀> 중에서 -

나는 책에서 소쩍새를 알았고 서울 변두리에서 자라  소쩍새의 울음소리도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그 두 가지를 합쳐서는 알 지 못했다.
"저 새는 왜 밤마다 저렇게 울지?"
오래전 마루에서 무심코 말을 꺼냈을 때 어머니가 말했다.
"소쩍새 아니냐. 배고프다고 밥 달라고 우는 것이야."
나는 그때 비로소 소쩍새를 울음소리와 함께 인식하게 되었다. 

평생 시는커녕 책이라고는 접해 보지도 못하고 60년대까지는 농사를 지으며  살아오신 어머니는 나보다 더 풍부하게 소쩍새를 이해하고 계셨다. 
"소쩍새는 참꽃이랑 살구꽃 필 때부터 울기 시작해서 깨꽃 피면서부터는 울지 않아.
아마 햇보리 먹고 배가 불렀는지도 모르지."
온몸으로 자연을 느끼고 받아들이며 살아온 사람들이 지닌 감각은 풍요롭다
그에 비해 나 같은 백면서생의 그것은 옹색하기 그지없다.

소쩍새 울음소리

아주 먼 옛날에 며느리를 미워하는 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밥을 주지 않으려고 아주 작은 솥을 내주어 밥을 하게 하였다. 결국 밥을 지어도 자기 몫이 없게 된 며느리는 끝내 굶어 죽고 말았다.
그리고 넋은 새가 되어 밤마다 시어머니를 원망하는 소리인 '솥이 적다,  솥이 적다 , 소쩍소쩍'하고 울게 되었다고 한다.  소쩍새가 '소쩍'하고 울면 흉년이 들고, '솟쩍다'하고 울면 '솥이 작으니 큰 솥을 준비하라'는 뜻으로 풍년이 든다는 민간 속설도 있다. 

『우리 새 백 가지』는 소쩍새에 대해 이런 사실도 알려주었다.
소쩍새는 올빼미목 올빼미과 소쩍새속에 속하는 새로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텃새이자 겨울 철새이기도 하다. 천연기념물로 보호종인 소쩍새는 몸의 길이가 18.5 ∼ 21.5cm이며 날개를 펴면 길이가 40 ~59cm로 올빼미류 가운데 가장 작다. 몸의 빛깔은 잿빛이 도는 갈색 또는 붉은 갈색이다. 야행성으로 초저녁부터 움직이기 시작한다. 알은 나무 구멍에 낳으며 한 번 산란 수는 4, 5개이다. 20여 일 동안 알을 품는 일은 암컷이 도맡아 한다.

소쩍새는 중부 이남에서는 부르는 말이고 중부 이북 특히 평안도 쪽에서는 접동새로 부른다.
김소월은 계모의 학대를 받아 죽은 누이와 남은 아홉 동생들의 서북지방 설화를 활용한  절창「접동새」에서  우리 민족의 보편적 정서인 한(恨)을 담아내기도 했다.

접동
접동
아우래비접동

津頭江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 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랩 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夜三更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죽은 누이는 접동새가 되어 밤이면 밤마다 아홉 오랍동생들을 못잊어 이 산 저 산을 옮아가며 '구읍접동'이라 구슬피 울었다. '구읍접동'이란 다름아닌 '아홉 오라버니 접동'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접동새가 밤에만 돌아다니며 구슬피 우는 까닭은, 까마귀가 된 계모가 접동새만 보면 죽이려고 달려들어 낮에는 숨어 지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불설워 : 몹시 서러워, 오랩동생: 남동생)

우리나라 옛 시가에는 두견새를 소쩍새로 잘못 사용한 사례가  많다.
중국문화 영향이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

중국 촉(蜀) 나라에 망제(望帝)라는 왕이 있었다. 그는 자기가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 권좌를 빼앗기고 말았다. 망제는 원통하게 울부짖다 죽어 두견(杜鵑)이라는 새가 되었다.
중국인들은 이런 두견이를 슬픔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세상의 어떤 새보다도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다.

두견이를 비롯하여 두우(杜宇), 두백(杜魄), 두혼(杜魂), 시조(時鳥), 자규(子規), 촉혼(蜀魂), 촉조(蜀鳥), 촉백(蜀魄), 망제(望帝), 망제혼(望帝魂), 귀촉도(歸蜀道), 불여귀(不如歸) 따위가 그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이런 영향으로 소쩍새를 두견이와 혼동하여  많이 쓰게 된 것이다.

두견새와 소쩍새는 엄연히 다른 새다. 무엇보다 두견새는 낮에 활동하고 소쩍새는 밤에 활동한다.
그러니까 '밤새워 슬퍼하는 두견새의 피를 토하는 듯한 울음소리' 같은 묘사는 잘못된 것이다.
『청구영언(靑丘永言)』에 나온 아래 두 시조 속 접동새나 자규에서 그 혼동의 예를 본다.

촉제(蜀帝)의 죽은 혼이 접동새 되야
밤마다 슬피 울어 피눈물로 그치느니
우리 님 그린 눈물은 어느 때에 그칠고

- 영조 때 김묵수(金默壽)의 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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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양하여  
잠 못 들어하노라 

- 고려시대 이조년(李兆年), '다정가(多情歌)'- 


어떤 사람이 '가을밤 소쩍새의 슬피 우는···'이란 표현을 쓰자, 다른 누군가가 소쩍새는 가을에 울지 않는다고 반박을 하는 글을 올렸다. 그렇지만 들은 사람이 분명히 들었다는 사실을 뒤집을 재간은 없어 그 논쟁은 '아마 환경변화로 인해 미처 짝을 찾지 못한 소쩍새가 있었던가 보다'라고 절충되고 말았다.

그 글을 읽고 소쩍새에 대한 것을 정리해 보았다.
올해 소쩍새는 '솟쩍다 솟쩍다'로 울어 농사 풍년이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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