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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청운문학도서관에서 수성동계곡까지

by 장돌뱅이. 2024. 6. 26.

오늘은 바람도 있고 날이 제법 시원해서 한낮에도 외출을 할 만했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나와 버스로 갈아타고 윤동주문학관 앞에서 내렸다. 

윤동주문학관 벽에 경쾌하고 밝은 분위기의 시가 쓰여 있다.
가벼운 걸음으로 어디라도 갈 수 있을 것 같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가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윤동주,「새로운 길」-

윤동주문학관은 몇 번 가본 터라 오늘은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고 바로 청운문학도서관으로 향했다.
청운문학관도서관은 한옥으로 지어졌다 
입구 쪽에 있는 자그마한 정자는 인공폭포 소리를 들으며 앉아있기 좋은 곳으로 이곳 도서관에서 유명한 장소인데 오늘은 TV촬영팀이 선점하고 있어서 접근금지였다.

지하열람실에서 두어 시간 책을 읽었다.
공지영의 책을 읽던 아내가 잠깐 읽던 책의 글을 보여주었다.

산다는 것도 그래. 
걷는 것과 같아. 그냥 걸으면 돼.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살면 돼.
그 순간을 가장 충실하게, 그 순간을 가장 의미 있게,
그 순간을 가장 어여쁘고 가장 선하고 재미있고 보람되게 만들면 돼.  

우선 바나나 껍질을 벗긴다. (너무 당연하지만) 껍질 벗긴 바나나를 세로로 길게 자른다. 프라이팬을 중불로 데우며 버터를 크게 한 숟가락 떠서 녹인다. (다른 걸로는 그 맛  이 잘 안 나고 버터가 좋더라고.) 세로로 길게 자른 바나나를  프라이팬에 굽는다. 뒤집어도 굽고 바나나가 대충 익으면  접시에 예쁘게 담아라. 여기에 꿀을 살살 뿌리고 계핏가루도 살살 뿌리면 끝!  
언제나처럼 더 화려하게 하고 싶으면 전에 말한 아몬드 슬라이스를 곁들이고, 또 손님이 오시는 날에는 아이스크림을 크게 한 숟가락 같이 내면 레스토랑 디저트 느낌이  나기도 하지. 어때? 쉽지? 중요한 것은 맛을 느끼며 천천히 먹는 거야. 천천히 그것을 먹고 나면 우리 유전자는 실은 약간은 행복해한단다.

오늘 아침 공지영의 레시피를 따라 만든 바나나버터구이

"음··· 아무래도 내일 아침엔 바나나를 구워야 할 것 같네."
공지영의 말대로 매 순간 가장 의미 있고 재미있고 보람되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면  내일 아침에 그것은 바나나 버터구이를 만드는 일일 것 같다. 평소 단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아내가 달달한 튀긴(구운) 바나나를 좋아하게된 건 인도네시아에 살 때부터이다. 음식은 그렇게 우리가 살아온 내력을 반영하기도 한다.  아마 우리는 내일 아침 바나나를 먹으며 그 시절을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유시민의 책을 읽었다. 마침 한국전쟁 74주기 날이어서 이런 글에 눈이 머물렀다.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국전쟁' 이전의 사건들은 크건 작건 모두 전쟁으로 홀러 들어갔고, 그 이후 정치와 사회, 외교도 모두 이 전쟁의  테두리 안에 놓였다. (···) 대한민국은 전쟁의 피바람을 마시면서 성장했다. 국가기구가 급속하게 팽창했고 반공주의가 위세를 떨치는 가운데.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안보 체제에 편입됨으로써 가까스로 국가의 안정을 확보했다. 10만 남짓하던 군대는 전쟁을 거치면서 60만이 넘는 대군으로 성장했고 경찰의 규모도 단기간에 5만 명을 넘겼다. 당시 대한민국의 사회경제적 발전 단계를 고려하면 지나친 규모였으며 이것이 전쟁 이후 정치의 틀을 결정했다. 1961년 군사쿠데타와 뒤이은 30년간의 군부독재는 분단과 전쟁이 아니고는 그 유래를 설명하기 어렵다. 기나긴 자본주의 발전과 사회적 분화를 거치면서 상비군과 관료제가 발전하고 국가제도가 형성된 것이 아니라 길게는 8년, 짧게는 3년에 불과했던 전쟁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국가가 만들어졌다. 우리의 국가는 시민사회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시민사회의 도전을 파괴하면서 밖에서 주어진 다음 급팽창하는 형태로 구축되었다.

- 『국가란 무엇인가』 중에서 -

전쟁 전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전쟁 이후의 모든 것을 규정지으면서 여전히 진행 중인 전쟁.
대북전단을 살포하고 오물풍선을 띄워보내는 치졸함까지를 포함한 이 참담한 현실을 넘어 어떻게 평화와 공존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인가? 

청운도서관을 나와 인왕산길을 따라 수성동계곡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초소책방".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사건 이후 청와대 방호 목적으로 세운 경찰초소를 2018년 인왕산 전면 개방에 따라 서울시와 종로구가 리모델링을 한 건물이라고 한다. 기존 건물의 구조를 살리고 훼손된 주변 자연을 복원하여 시민을 위한 복합문화공간과 전망데크를 조성한 것이다.
우리는 옥상에서 서울 시내를 조망하고 2층으로 내려와 밝은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아래 사진은 수성동계곡 쪽으로 조금 더 가면 있는 무무대전망대에서 본 풍경이다. 남산에서 청와대 뒤쪽의 백악산까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구름이 벗겨지면서 드러나는 푸른 하늘도 장쾌했다.

조선후기 수도 한성부의 역사와 모습을 자세히 기록한 지방지 『한경지략(漢京識略)』에 수성동을 소개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인왕산 기슭에 있으니 골짜기가 그윽하고 깊숙하며 시내와 암석이 빼어남이 있어 여름에 놀며 감상하기가 좋다. 혹은 이르기를 이 골짜기가 비해당(匪懈堂)의 옛 집터라 한다. 다리가 있는데 기린교(麒麟橋)라 한다.

'게으를 수 없다'는 뜻의 비해당은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의 집을 말한다.  안평대군은 시 ·문·서·화·금·기(詩文書畵琴棋, 시, 산문, 글씨, 그림, 거문고, 바둑), 이른바 육절(六絶)의 풍류대가였으므로 그의 안목으로 잡은 집터는 도성 안에서 최고의 명당으로 일컬을 만한 자리였을 것이다.

아래 그림은 겸제 정선이 그린 <수성동(水聲洞)>이다.

그림에는 계곡에 걸친 다리를 막 건넌 듯한 세 명의 선비가 보인다.
동자 한 명을 데리고 산책이라도 나온 것 같다.
긴 지팡이를 짚고 앞장선 이가 행중의 존장인 듯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다.

수성동계곡의 실제 풍경은 겸제의 그림에 못지 않은 절경이다.
물이 말라있지만 장마철에 엄청난 물이 내려올 것 같은 커다란 바위 계곡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마을 이름이 '물소리(水聲)'인 것이 혹 계곡의 물소리와 관계가 있지 않을까?
그 위에 걸친 돌다리가 겸제의 그림을 참고로 복원한 기린교다.
멀리 인왕산이 배경으로 떠있고 계곡 좌우로는 소나무들이 옛 그림처럼 자태를 뽐내고 있다. 

수성동계곡 반대편은 오밀조밀한 서촌 동네다.
아파트가 시야에 없는 풍경 속을 걸으면 옛날로 돌아간 기분이 들곤 한다. 
어깨를 나란히 골목마다 이어진 살림집과 숙소, 카페와 음식점을 보며 걸었다.
어느새 경복궁역에 다다랐다.

작년 4월 나는 독서회 회원들과 서촌과 수성동계곡을 거쳐 윤동주문학관까지 걸은 적이 있다.
위 수성동계곡 의 글 대부분은 그때의 여행기에서 가져왔다.

 

서촌 문학기행

작년에 가입한 독서 토론 모임 "동네북(BOOK)"에서 서울 서촌으로 문학기행(산책)을 다녀왔다.나로서는 줌(ZOOM)으로만 만나던 회원들을 처음으로 직접 대면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안내는 시인

jangdolbang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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