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많이 올 거라는 예보가 있어 우산을 챙겨 들고 아내와 집을 나섰다. 안국역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창덕궁 옆에 있는 노무현시민센터까지 걸어가, 그곳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다가 돌아올 생각이었다. 나는 김영하의 소설을 챙겼고 아내는 시민센터에 있는 책을 골라서 읽기로 했다.
천도교 중앙대교당 앞쪽 골목에 있는 음식점 "수인"에서 점심을 했다.
가까운 초복 복달임을 겸해서 이곳의 점심 시그니쳐 메뉴인 삼계탕이 먹고 싶었지만 우리가 도착한 오후 1시 반 무렵에는 이미 오늘 준비한 양이 다 팔렸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닭죽으로 대신했다.
"같은 국물이니 괜찮으실 겁니다."
주인은 위로(?)를 건넸다. 우리에겐 다시 와야 할 이유가 생겼을 뿐이다.
식당 건너편에 운현궁(雲峴宮)이 있다.
예정에는 없었지만 식사를 마치고 잠시 그곳에서 발밤발밤 하기로 했다.
운현, 구름고개라는 서정적 이름과는 달리 이곳은 흥선대원군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고종을 대신해서 10여 년 간 권력을 행사한 정치적 거점이었다. 역사 시간에 배웠던 서원철폐, 경복궁 중건, 쇄국정책 등이 이곳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또한 그가 생의 마지막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조선 말 격변기에 있었던 많은 사건의 중심에서 벗어난 그저 옛집일뿐이었다. 건물의 이름이 노안당(老安堂), 노락당(老樂堂), 이로당(二老堂)으로 노인 '노'자가 들어가 그런 느낌을 더해주었다.
몇몇 외국인들이 빌린 한복을 입고 즐겁게 여행의 한 순간을 휴대폰에 담고 있었다.
반복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비즈니스적인 측면이 우선이겠지만 외국인들에게 빌려주는 한복들이 좀 더 예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른 건 몰라도 특히 색상이, 너무 싸구려 티가 나서 눈에 거슬리고 괜히 그들에게 미안해진다.
노무현시민센터까지 가는 동안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다.
센터 안에는 공연장과 미디어센터, 그리고 도서관과 카페가 있었다.
기념품 코너에서 아내와 내 티셔츠를 사고 3층 가페에 올라 책을 읽었다.
그제서야 창밖으로 비가 쏟아졌다.
"이제 우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깊은 상실감 속에서도 애써 밝은 표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세상에 많을 것이다.
- 김영하 소설집, 『오직 두 사람』작가의 말 중에서 -
그리고 어떤 이들은 '그 이후'에 삶에 대한 생각을 바꾸기도 한다.
사회 문제에대해 별 관심 없이 춤동아리에 들어 춤을 추고 친구들과 즐겁게 어울리는 것으로 대학을 마친 딸아이는 노무현의 '그날' 이후로 달라졌다. 처음에는 충격이었고 그다음은 왜? 였을 것이다.
그 답을 얻기 위해 딸아이는 덕수궁 앞 분향소가 철거될 때까지 매일 저녁 회사에서 바로 그곳으로 퇴근을 해서 자리를 지키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문을 했다. 마지막 추모 행렬을 따라 봉하마을을 다녀온 뒤론 '내가 사는 세상의 모습과 내력'을 알기 위해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며 공부를 시작했다.
딸아이도 아내와 나도 아직 제대로 된 답을 얻지 못한 채 이전처럼 그냥 어정쩡하게 산다.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실천이라 자기위안 또는 착각을 하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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