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아내와 함께 도서관이나 카페로 마실을 간다. 여행이라고 해도 좋겠다.
동남아로 여행을 가면 아침을 먹고 책을 한두 권 챙겨 수영장으로 가서 소일할 때가 많다.
책을 들고 도서관이나 카페에 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비행기 대신 지하철을 타고, 수영장 아닌 도서관(카페)에서 책을 읽는 것이다.
호텔에선 책을 읽다 더우면 수영을 하고 도서관에선 아이스커피를 마신다.
매봉산숲속도서관은 금호역에서 아파트 사이로 난 언덕길을 잠시 걸어 오르면 있다.
2020년에 개관을 했다고 한다. 최근에 이런 작은 도서관들이 서울 곳곳에 생겨나서 반갑다.
산자락에 있는 도서관은 산길을 걷는 즐거움도 준다.
새로 지어져 깔끔하고 실내가 밝아 세련된 카페 분위기를 내는 곳도 여럿이다.
매봉산 도서관은 커피를 파는 곳이 없어 가져간 생수를 마셨다.
아내와 나란히 앉아서 책을 읽는 시간.
한가한 휴식이고 여행이다.
매봉산도서관 간 날은 다른 곳에서보다 조금 일찍 나와 신당역 근처 서울중앙시장으로 갔다.
시장 안에 있는 식당 "계류관(鷄流館)"에서 장작구이 닭에 맥주를 마셨다.
여름해가 길어 오후 5시가 가까웠는데도 한낮처럼 밝아 낮술을 마시는 느낌이었다.
그 시간도 한가로워서 좋았다. 예전엔 뭐가 그리 바빴던 것일까?
무엇을 한다고 낮술 한잔 못하고 보냈던 것일까?
무엇을 위해서 아내로하여금 걸핏하면 나의 늦은 귀가를 기다리게 했던 것일까?
때늦은 후회도 해보면서.
낮술에는 밤술에 없는 그 무엇이 있는 것 같다. 넘어서는 안될 선이라거나, 뭐 그런 것. 그 금기를 깨트리고 낮술 몇 잔 마시고 나면 눈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햇살이 황홀해진다.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은 아담과 이브의 눈이 밝아졌듯 낮술 몇 잔에 세상은 환해진다.
우리의 삶은 항상 금지선 앞에서 멈칫거리고 때로는 그 선을 넘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것.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라. 그 선이 오늘 나의 후회와 바꿀 만큼 그리 대단한 것이었는지.
낮술에는 바로 그 선을 넘는 짜릿함이 있어 첫 잔을 입에 대는 순간, 입술에서부터 '싸아' 하니 온몸으로 흩어져간다. 안전선이라는 허명에 속아 의미 없는 금지선 앞에 서서 망설이고 주춤거리는 그대에게 오늘 낮술 한잔을 권하노니, 그대여 두려워 마라. 낮술 한잔에 세상은 환해지고 우리의 허물어진 기억들, 그 머언 옛날의 황홀한 사랑까지 다시 찾아오나니.
- 박상천,「낮술 한잔을 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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