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섬에 있는 지하철 7호선 자양역과 연결되어 있는 '뚝섬 자벌레'는 이름이 다양하다.
어느 게 공식 이름이고 어느 게 별명인지 알기 힘들다.
'뚝섬 자벌레'라고도 하고 '서울생각마루'라고도 하고 둘을 붙여서 '뚝섬 자벌레 서울 생각마루'라고도한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전혀 다르게 '한강이야기전시관'이라고 되어있다.
이름이 복잡하다는 건 거기에 깃든 사연이 복잡하다는 것일 게다.
'한강이야기전시관'에는 한강의 역사와 자연에 관한 전시물과 영상들이 있다.
지금의 서울 시장이 관심을 둔다는 이른바 '한강 르네상스'에 대한 코너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5년 전 그의 재임 시절에 무리한 개발 추진으로 많은 생명이 스러진 '용산 참사'의 기억이 생생한데 돌아온 그는 여전히 한강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한강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한강에 또 뭔가를 하려고는 것 같다.
그게 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르네상스라는 이름을 붙였으므로, 사족을 달자면 르네상스는 단지 재활용이나 재생, 재개발이라는 물리적 의미가 아니라 인간 중심의 사상과 가치관을 강조하는 인문주의 '운동'이었다는 것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자벌레'는 집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지만 자주 가지 않았다.
오래전 문을 열었을 때 산책 길에 한 번 가보았을 뿐이다. 그때 작은 도서관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번에 가보니 도서관은 없고 카페와 전시실, 키즈카페 등이 있었다.
중간에 바뀌었는지 아니면 원래부터 그랬는지······ 가물가물(나이 탓으로 해두자).
뚝섬유원지는 주말은 물론 평소에도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다.
자벌레 카페에는 오락가락하는 비와 더운 날씨를 피해서 들어온 사람들까지 더해져서인지 생각보다도 사람들이 많았다. 2층 카페는 책 읽기에 집중하기 힘들 정도로 소란스러워 3층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공간은 작았지만 음료를 가져올 수 없어서인지 한결 조용했다.
그곳에서 나는 들고 간 책 대신에 카페에 진열되어 있던 미술사학자 최열이 쓴 『옛 그림으로 본 서울』을 읽었다. 읽었다기보다는 책 속의 그림을 보았다.
조선 정조 때 중인 출신의 시인 천수경은 (인왕산) 옥류동 계곡에 초가를 짓고 집 주위의 울창한 소나무 숲과 큰 바위를 따라 집 이름을 송석원(松石園)이라 지었다. 이곳은 점차 시인 가객들이 모이는 터전이 되었고 1786년에는 송석원시사(詩社)라는 모임이 결성되었다.
장기나 바둑으로 사귀는 것은 하루를 가지 못하고, 술과 여색으로 사귀는 것은 한 달을 하지 못하며, 권세와 이익으로 사귀는 것도 한 해를 넘지 못한다. 오로지 문학으로 사귀는 것만이 영원하다.
은퇴한 백수들에게 주는 충고 같다. '문학' 대신 무슨 말을 넣을까?
나는 무위도식이 좋긴 하지만.
아내는 공지영의 『먼바다』를 읽었다.
'그 시간의 기억에서 당신을 지우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첫사랑에 관한 소설이라고 했다.
책 표지를 들춰보니 이런 글이 있었다.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고 영원으로부터 영원토록 부조리했다. 분노가 치밀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부조리에, 폭력과 음모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모스부호를 타전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내가 여기서 내 마음을 다해 보내는 위로와 사랑은 하찮은 것이 아니라는 우주의 한 비밀을.
아르헨티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천국은 일종의 도서관 같은 곳일 거라고 상상했다'고 한다. 나는 거기에 천국이 요즘 부지런히 다니고 있는 카페와 도서관의 경계에 있을 거라고 덧붙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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