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곳곳에 이른바 '무장애길'이 늘어나고 있다. 노약자들도 갈 수 있고 휠체어도 갈 수 있는 평평하고 경사도 가파르지 않는 길이 여기저기 생겨나는 건 좋은데 무장애(無障礙)길이라는 이름은 좀 별로다.
처음 '무장애길'이란 안내판을 보았을 때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느라 잠시 멈칫거려야 했다.
'걷기 편한길'이나 줄여서 '편한길' 아니면 '열린길'이라 해도 좋을 것 같은데 굳이 '무장애길'이라 글쎄······ 나머지 길들은 '장애길'이라는 건지······. 의미도 감성도 살갑게 다가오지 않는다.
어딘지 7080 권위주의 시절의 나이 든 공무원 냄새가 난다.
하지가 가까워 낮시간이 길어졌다.
봄철엔 저녁 무렵이라 할 시간에 걷기를 시작해 두어 시간을 걸어도 여전히 해가 있다.
덕분에 더위가 한창인 시간을 피해 우면산으로 향할 수 있었다.
일찍 찾아온 더위라지만 숲속에선 도심에서만큼 강렬하지 않았다.
나뭇잎 사이로 파고드는 햇살엔 바람과 새소리가 묻어 있어 아직 청량함이 느껴졌다.
일상에서보다 큰 들숨과 날숨을 쉬어 보기도 하며 걷고 쉬고 쉬다 또 걸었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서늘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여름에 나무꾼이 나무를 할 때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 준대요.
강가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사공이 배를 젓다 잠이 들어도
저 혼자 나룻배를 저어 간대요.
- 윤석중, 「산바람 강바람」-
초등학교 시절의 동요를 흥얼거리며 걸었다. 이젠 벌목 노동자는 있어도 '자영업자' 나무꾼은 없고 유람선 선장은 있어도 뱃사공은 없는 세상이지만, 바람은 여전히 이마에 흐른 땀을 시원히 씻어 주었다.
우면산 숲길은 남부터미널역에서 사당역까지 어어지지만 데크길이 끝나는 중간 지점에서 방향을 틀어 길을 되짚어 원점으로 돌아왔다. 1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나이가 들면서 육체는 여기저기 불쑥불쑥 예기치 않은 곳에서 시들어가는 징후를 드러낸다.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는 건 말장난이다. 늙음은 불가역적인 것이다.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지만 사실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어찌할 수 없는 일들에 우울해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지금, 몸을 일으켜 거침없이 걸어볼 일이다.
'산책을 잃으면 마음을 잃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걷는 동안은 그리고 걸을 수 있는 동안은 언제나 '기쁜 우리 늙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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