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배숲화경도서관은 딱 1년 전에 문을 연 도서관이다.
봄이면 철쭉이 가득한 서리풀공원에 붙어 있다.
지하철 7호선 내방역에서 내려 걸어서 갔다.
6월 초인데 한낮 햇볕 아래에선 날씨는 이미 한 여름이다.
그래도 그늘에 들면 아직은 선선함을 느낄 수 있긴 하다.
방배숲도서관 열람실은 동그란 가운데뜰(中庭)을 바라보게끔 둘레를 따라 원형으로 들어서 있다.
천장이 높고 창이 많아 시원스럽고 밝은 느낌이 든다.
아내와 나는 뜰을 바라보는 자리를 잡았다. 나는 며칠 전 작고한 시인 신경림의 시를 논한 평론집 『신경림 문학의 세계』을, 아내는 김제동이 쓴 『내 말이 그 말이에요』를 들고 갔다. 도서관에 집에서 읽는 책을 들고 가는 게 좀 이상할 수도 있지만 최근 아내와 다니고 있는 도서관 순례에선 도서관의 책은 그냥 구경만하고 가지고 간 책을 읽는 것으로 하고 있다.
『신경림 문학의 세계』는 30년 전인 1995년에 나온 책이다.
30대 후반의 젊은 시절에 읽었던 책을 시인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다시 읽는 중이다.
신경림은 우리 세대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시인 중의 한 명이다. 신경림을 함께 읽었던 대학 친구는 그의 타계 소식을 단톡방에 올리기도 했고 나는 그를 기리는 글을 블로그에 썼다.
"자기가 말하는 것 같지 않게 하면서 무슨 말인가를 할 수 있어야 좋은 시."
예전에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시인의 말이 눈에 들어왔다.
직설적으로 의도를 드러내는 말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에둘러 가는 은근함이 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필요하지 않을까 오래 생각하게 했다.
아내는 『내 말이 그 말이에요』를 김제동의 목소리와 말투를 상상하며 읽는다고 했다.
그의 '조건 없는 지지와 응원'의 말들이 그래야 한층 더 살아난다며.
"그럼, 그만하면 됐어. 그래, 그만하면 괜찮다."
저는 이런 말들이 사람을 살게 한다고 믿습니다.
조건없는 지지와 응원, 그런 게 천국이고, 때로는 그런 말도 필요없이 그냥 "그래, 잘 살았다. 내 니하고 끝까지 갈 끼다." 이렇게 얘기해 주는 한 사람만 있으면 저는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도 대책 없는 위로를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책의 한 부분을 보여주며 아내가 덧붙였다.
"책을 읽는 동안 새삼 내가 당신에게 많은 위로를 받고 살아왔음을 알았어."
이 말에 나는 부끄러워 손사래를 치면서도 속으로는 춤추는 고래가 되었다.
앞으로도 아내의 감언이설(?)에 기꺼이 속아 넘어갈 것이라는 다짐과 함께.
카페 같은 분위기의 도서관에 만족하여 푹 젖어있다 돌아오는 길에 닭구이를 먹었다. 고소한 숯불구이 냄새의 유혹에 끌리면서 김제동도 '자신을 소중히 하는 것은 제대로 자신에게 밥을 먹이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누가 묻지도 않는데 스스로 변명거리를 만들었다. 간만에 소맥도 한 잔 했다.
무슨 반찬을 만들까 하는 고민과 만드는 수고로움과 설거지 걱정에서 해방된 편안한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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