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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국수 먹고 배봉산 다녀오기

by 장돌뱅이. 2024. 6. 13.

가까운 곳에  걷기 좋은 공원이나 호수가 있는 건 삶의 질을 높여주는 자산이다.
도서관이나 극장이 있는 것도 그렇다. 맛난 식당이 있는 것은 보너스다. 

건대역 근처의 식당 "정면(情麵)".
메뉴는 간단하다. 국수 한 가지를 두 종류 - 백면과 홍면으로 만들어낸다.

해물육수를 바탕으로 했다는데 홍면은 매콤함과 어우러져 묵직했고 백면은 구수함과 어우러져 깊은 맛을 냈다. 기교를 많이 부리지 않아 두 가지 다 개운했다.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듯한 맛이었지만 나로서는 미슐랭 빕구르망에  2년 연속 선정되었다는 배경이 없다고 하더라도 인정할만한 국숫집이었다.

홍면보다 백면이 좋았다. 돼지고기가 들어간 음식에 좀처럼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 아내도 동의했다.
제주도 고기국수와 비슷한 듯 달랐다.
식당 안은 매우 작아서 좌석이 7개뿐이었다. 
두 젊은 남자 주인의 사근사근한 말과 서비스는 그런 오붓한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식당을 나와 버스를 타고 배봉산으로 갔다.
동대문구 전농동, 휘경동에 있는 높이 108미터의 나지막한 산이다.
버스정거장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이른 더위가 시원한 곳에 대한 갈증을 불러왔다.

산 들머리에 있는 "배봉산숲속도서관"과 아이스아메리카노는 구원이었다.

아내는 김훈의 소설을 읽고 나는 법륜 스님의 글을 읽었다.

어떤 것이 남에게 전달될 때는 언어, 문자나 몸짓 등에 의해 표현되고 이 표현은 서로 간에 약속된 언어, 문자와 몸짓으로 하기 때문에 역사성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 지역의 언어와 가치의 문화적 풍토와 사고의 경향에 견주어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진리의 길로 인도해 야 하기 때문에 그 시대의 역사적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인 불경은 바로 2600여 년 전 인도라는 당시의 시대상황에 맞게 설해진 방편이다. 글자 하나에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는가 하는 글자에 담긴 마음을 읽어야 한다.  
(···) 경전은 단지 우리를 열반에 인도하는 길잡이요, 수단이다. 경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언어와 문자, 경전에 집착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목적화시킨다. 경전의 역사성을 무시하고  절대화함으로써 경전의 말씀 그 자체를 초역사화시킨다. 모든 것을 자구(字句)대로 적용한다. 그리고는 마치 자랑하듯이 살아 생동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 죽어버린 문자를 우리 앞에 진열한다. 부처님께서는 후세의 이런 병폐를 염려하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의 가르침은 뗏목과 같다. 뗏목은 강을 건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강을  건넌 사람이 뗏목이 고맙다고, 강을 건넌 후에도 짊어지고 간다면 어리석지 않겠는가? 그와 같이 구원받고 건너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이 뗏목의 비유를 말하는 것이다. 진실로 뗏목의 비유를 알고 있는 너희들은 법이라 할지라도 버려야 할  것인데, 하물며 비법(非法)에 있어서라." 

기독교 성경을 읽으면서도 '궁극적으로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는가 하는 글자에 담긴 마음'을 염두에 두지만 쉽지 않다. 일반 신자들에게 올바른 믿음과 경전의 해석을 제시하는 수도자가 필요한 이유겠다. 
바로 그 때문에 또 오해가 나오고 세상이 혼란스러워지기도 하지만.

2019년에 개관했다는 "배봉산숲속도서관"은 책 읽기에 좋은 환경이라고 하긴 힘들었다.
'숲속도서관'이라는 이미지가 주는 청량감을 느끼기에는 분위기가 산만했고 자주 시끄럽기까지 했다.
최근에 둘러본 몇 곳의 숲속도서관 중 가장 불만스러운 곳이었다. 도서관 직원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카페와 도서관 사서의 일자리가 거의 붙어있다시피 해서 생기는 구조적인 문제 같았다.  

예정보다 조금 빨리 도서관을 나와 배봉산 둘레길을 걸었다. 걷기 편한 4.5km의 순환형 데크길이다.
2018년에 가을에 아내와 배봉산에 온 적이 있는데 그때는 데크길이 없었던 것 같다.
(*이전 글 : 2018.10.16 - 배봉산)

 

발밤발밤43 - 배봉산

지난 일요일 지하철 군자역에서 시작하여 중랑천 둔치를 걸어 배봉산에 올랐다.높이가 110미터이니 산이라기 보다는 언덕에 가깝다.'올랐다'는 표현이 쑥쓰러울 정도인지라 걷기에는 더없이 편

jangdolbange.tistory.com

우리는 둘레길의 반 정도를 걸었다.
올 가을 단풍이 들 때 다시 와 온전히 한 바퀴를 돌기로 했다.

어떤 성취나 목표를 세우지 않아도 되는 백수 생활을 나는 자주 '신선의 경지'라고 말한다.
그런 말을 할 때면 나같은 '백수 체질'이 34년 동안  '머슴살이'를 어떻게 했는가 싶기도 하다.
오래전 친구인 한 유명 코미디언이 내게 월급쟁이를 작파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나의) 적성에 맞는 다른 길을 걸으라고 재미있는 표현으로 권한 적이 있다.

"야, 한 달에 한 번 월급 나오는 거, 그거 약발 떨어질 때 주사 한 대씩 놔주는 뽕 같은 거야.
중독되기 전에 다른 걸 한 번 해 봐."

그가 말하는 '다른 게' 자신이 활동하는 분야를 말하는 거라 따라갈 순 없었다.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씩 맞는 '뽕' 덕분에 자식을 키웠고 매일 같이 나를 기다리는 손자들도 두 명이나 생겼다. 크게 이룬 것도 없고 떨어진 '약발' 때문에 여전히 간당간당하게 살고 있지만,  40년 동안 아내와 손을 잡고 걷고 있으며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았으니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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