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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카페 선운각에서

by 장돌뱅이. 2024. 6. 20.

경전철 우이신설선은 북한산 입구와 신설동을 오간다.
2017년에  개통되었다. 경전철이라는 의미는 정확히 모르지만 마주 보는 사람들의 거리가 가깝게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전철의 폭이 작은 것 같다. 물론 연결된 차량의 대수도 적었다.
아내와 북한산 둘레길이나 우이령길을 갈 때 타보았다.

이번에는 카페 선운각을 가기 위해 탔다.
북한산우이역에서 밖으로 나오자 일더위의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해를 피해 상점 건물과 나무의 그림자를 밟으며 걸었다.

상점 밀집지역을 벗어나도 그림자가 성긴 숲길이 이어졌다.
비릿하고 들큼한 밤꽃 향기가 공기 중에 배어 있었다.

*이전 글 : 

 

밤꽃 피는 유월에

"언제부터 여름이야?"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던 손자친구가 갑자기 생각난 듯이 물었다."여름? 여름은 유월부터라고 해야겠지?. 그치만 갑자기 내일부터 확 더워진다는 뜻은 아니야."끊임없이 흐

jangdolbange.tistory.com

20여분 1.5km를 걸으니 선운각이었다.
선운각이 목표라고 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선운각을 빙자한(?) 걷기가 목표였다.

국립공원 안쪽(인지? 아닌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깊은 곳에 어떻게 카페가 생길 수 있었을까?
 의문은 대문에 붙은 안내문을 보고 조금 풀렸다.

하지만 설명은 미진한 부분이 많아 가려움을 키운다. 
왜  이 깊은 산속에 이런 한옥을 지었을까?  사무실이나 주거용도였을 것 같지는 않고 애초에 고급 요정으로 지었다는 이야길까? 3공 시절에 고급 요정을 사용될 때도 재벌 회장이 여전히 건물주이고 요정의 대표였을까? 이곳을 드나들었던 사람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이곳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과거의 내력이야 무엇이건 카페는 단정한 모습이었고 초록의 잔디가 깔린 마당은 눈부신 햇살을 한가득 담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툇마루와 내실을 드나들며 시간을 보냈다.

예전에 집과 사무실 밖에서 커피를 마시는 곳은 다방과 호텔 커피숖이었다.
그곳은 커피를 마신다기보다는 대개 사람들을 만나는 장소였다.
지금 사람들은 다양한 목적으로 카페를 찾는다. 사람을 만나는 목적은 여전하지만 책을 읽기도 하고 컴퓨터를 들고 와 업무를 보거나 글도 쓴다.
J.K. 롤링(Rowling)도『해리포터와 마술사의 돌』의 대부분을 카페에서 썼다고 한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레이 올든버그는 그의 저서 『The Great Good Place』에서 카페를 공공도서관, 공원 등과 함께 제3의 공간으로 분류했다. 제3의 공간은  가장 기본적 삶의 공간인 집이라는 제1의 공간, 노동(업무) 공간인 제2의 공간 사이에 위치하는 곳이다.

그곳은 가기 편하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있고 비용이 많이 들지 않으며,
세상에 속해 있지만 세상과는 다른 평등과 공통의 공간이다. 나만의 공간이기도 하고 동시에 타인과 관계를 나눌 수 있는, 닫혀있으며 열려있는 경계의 공간이다. 컴퓨터로 조용히 자신의 일에만 몰두를 한다고 해도 굳이 개인적인 공간을 두고 카페에 나와 앉아 있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집단의식에 동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경계의 공간이 주는 의미에 주목하여 커피와 접합시켜 상업화에 성공한 사람이 스타벅스의 하워드슐츠이다. 그는 커피만이 아니라 스타벅스라는 새로운 개념의 공간을 사람들에게 제공한 것이다.

아내와 나는 카페에 가는 걸 좋아한다.
그냥 빈둥거리기, 멍 때리며 바깥 풍경 바라보기, 책 읽기, 휴대폰보기, 사진 찍어 지인들에게 보내기 등등 카페가 주는 한가로움을 좋아한다. 책을 몇 쪽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이나 긴급한 통화가 필요 없는 시간은 번잡했던 지난 삶을 돌아보게 한다.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이미 저질러버린 지난 실수에 너그러워지는 시간을 복되다. 
제주도 한달살이를 할 때 1일 1 카페를 일정에 넣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카페 선운각에서도 그랬다. 아내와 카페 안팎을 걷고, 걸으며 사진을 찍고, 그 사진으로 카톡 프로필을 바꾸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내고, 톡을 주고받고, 책을 읽었다.
나는 컴퓨터를 꺼내 블로그에 글을 쓰며 작가 흉내를 내보기도 했다.
 "What more could we want?"
이럴 때 내가 자주 쓰는 말이다.

어디에 있다가 슬며시 곁으로 다가드는  
오후의 시간은  
카페 단테에나 들르는 시간  
탈곡기 같은 소리로  
사랑의 허위를 누설하는 시간  
무용담이 좀 끼어들어야 재미있지  
나 너 사랑했어!  
덜컥 이런 문자를 보내고 싶은 시간  
마적 떼 밀려오는 서부영화 장면처럼  
말발굽 소리로 스쳐 버린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그냥 질풍처럼 내달았어야 했을까  
잘못 살았나 봐  
마른 갈대밭 기러기 깃털을 뜯어내며  
머그잔 가득 모래 폭풍을 마시는 시간  
오후의 시간은  
햇살에 굴복하여 피기도 전에 시드는  
붉은 장미 발아래 가득해  
불현듯 중요한 볼일이나 있는 듯이  
카페 단테에나 들르는 시간 

- 문정희, 「카페 단테」-  

카페의 옥상에선 멀리 인수봉과 백운대가 올려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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