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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샛강생태공원에 가는 봄

by 장돌뱅이. 2024. 6. 1.

아침 하늘에 햇살이 가득하다.
간단한 토마토달걀볶음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토마토의 향긋함과 달걀의 고소함의 조합이 좋아 자주 먹는 음식이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베란다 창문 너머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오래 바라보았다.

오늘은 날씨가 좋지만 (今日風日好)
내일은 혹시 이와 다를지 모른다 (明日恐不如)
하지만 봄바람은 사람을 향해 웃으며(春風笑於人)
어째 근심을 하고 있느냔다 (何乃愁自居)

당나라 이태백의 시였던가.
내일 일이 어떨까 근심하기 보단 오늘에 방점을 찍으며 살 일이다.
지금의 저 좋은 햇볕을 또 언제 볼 수 있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날씨의 유혹을 거부하지 못해 점심 무렵 집을 나섰다. 

점심은 광화문에서 감자탕으로 먹었다. 
1970년대 서울 응암동과 청량리에 감자탕 골목이 들어서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감자탕을 어떤 음식 평론가는 우리의 소울푸드라고 부르기도 했다. 일반인들이 구하기 쉽고 가격도 저렴한 보통의 재료를 사용하면서 맛과 영양이 풍부한 음식이 소울푸드의 조건이라면 감자탕은 그 조건에 (유일하게 들어맞는 음식은 아니지만) 잘 맞는다고 할 수 있겠다. 

근데 왜 돼지뼈탕이 아니고 감자탕으로 부르게 되었을까? 먹을 때마다 궁금해진다.
감자탕에서 감자를 빼면 뼈해장국이 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감자를 넣는다고 해도 감자보다 여전히 뼈가 많은데 왜 굳이 감자탕으로 부르는 것인지 모르겠다. 감잣국이거나 뼈해장국이거나 평소 육식(특히 돼지고기)을 썩 좋아하지 않는 아내도 잘 먹는 음식이어서 나로서는 다행스러운(?) 음식이다. 

돼지뼈에 붙은 살점을 발라 먹고 수제비와 당면에 볶음밥까지, 과식을 걱정하면서도 입은 즐거운 'Guilty-Pleasure'를 만끽하고 여의도 샛강생태공원으로 향했다.
초록의 공원엔  오월 마지막 날을 보내는 투명한 햇살이 가득 퍼부어지고 있었다.

순정한 꽃 한 송이 피워야 할 봄날이다

부치지 못한 편지 묵혀도 좋을 봄날이다

이대로 늙으면 또 어떠냐,

낙화유수(落花流水)의 봄이다

- 박시교, 「봄날은 간다」-

샛강생태공원은 여의도 남쪽 샛강 주변의 자연환경을 활용하여 1997년에 조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생태공원이라고 한다. 버드나무와 갈대, 억새, 뽕나무 등으로 무성한 숲 속엔 황조롱이, 왜가리, 수달, 말즘, 제비꽃 같은 희귀 동식물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 매점이나 가로등이 보이지 않는 이유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공원의 숲은 짙어 주변 고층빌딩들을 가려주었고 그늘은 깊어 서늘했다.
그 사이로 난 길은 대부분 맨땅이어서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많았다.

🎵Music provided by 브금대통령 / 🎵Track : 서커스 유랑단

은퇴를 하고 나면 갑자기 남아 도는, 뭔가로 채우지 않으면 늘 비어있을 백지장 같은 시간을 처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사람들은 그림과 음악, 요리와 사진을 배우거나 낚시와 등산, 여행에 빠져들곤 한다.
아내와 나도 붓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생소한 악기도 손에 잡게 되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마술동아리에 들어 짝퉁 '데이비드 카퍼필드'나 '이은결'이 되어보기도 했다.
직장에 매여 있을 땐 꿈도 꾸지 못했던 이른바 한달살기의 장기 여행도 해 보았다.   

그러나 매일 낯선 곳을 여행하고 맛난 음식을 찾아다니며 소털 같이 많은 시간을 채우기는 어렵다. 금전적인 문제에 더하여 그 어떤 짜릿한 경험이나 느낌도 오래 반복되면 진부해지고 무료해지기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아프리카를 두 달 가까이 여행한 여행 모임의 한 회원이 '여행을 여행으로 느끼게 하는 기간은 최대 한달'이었다고 말했을 때 많은 회원들이 긍정을 했다.

어떤 심리적 마지노선을 넘어서면서부터 여행은 더 이상 싱싱한 꿈을 뿜어내는 화수분이 아니라 예정된 일정을 관성으로 완주해야 할 뿐인 부담스러운 숙제가 되었던 것이다.
여행의 끝은 일상으로 돌아오는 귀가이고 '맛집'의 끝은 집밥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결국 사는 일엔 매일 먹는 집밥과 같이 반복해도 물리지 않는 일상 속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아내와 내게 그것은 걷는 일이다. 매일 집 주변, 골목과 시장과 강변과 공원과 호수 둘레를 걷는다.
때로는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나가 걷기도 한다. 걷기는 구태의연해지지 않는 여행이자 일상이며, 늘 새로운 맛의 외식이고 시들해지지 않는 집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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