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각자 읽던 책을 한 권씩 가방에 넣고 길을 나섰다.
지하철 6호선 월곡역에서 내려 간단히 점심을 먹고 월곡산에 있는 오동숲속도서관엘 걸어 올랐다.
낮은 산임에도 생각보다 길이 가팔랐다. 보통 사람에게는 큰 부담이 되지는 않을 정도지만 요즘 들어 특히 컨디션이 나빠진 아내로서는 여러 번 쉬어가며 올라야 했다. 사전에 알아본다고 했는데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다음에 올 때는 상월곡역이나 월곡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오르고, 내려올 때는 데크길을 이용하기로 했다.
근래에 들어 서울의 산에 "무장애(無障礙)길"이라고 부르는 데크길이 많이 생겼다.
몇 해 전까진 에둘러가는 데크길 대신 산 정상으로 오르는 기존의 지름길을 이용했는데 이젠 아내를 위해 적극적으로 그 길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머지 않은 날의 나를 위한 탐색이기도 하겠다.
흔히 하는 말로 세월 앞에 장사 없는 것이다.
"오동숲속도서관"은 카페 같은 도서관이다.
도서관 열람실에서 커피를 팔기도 해서 더욱 그랬다.
커피를 마시며 눈을 들어 숲멍을 때리는 한가로움이 책을 읽는 재미보다 좋아서 자주 책을 덮어야 했다. 숲이 책이고 책이 숲 같았다. 생각이 책 속으로 숲 속으로 흘러 다녔다.
그러다 까무룩 졸기도 했다.
도서관에 갔네
입구부터 개나리 목련
아카시아 은행나무 빼곡히 들어 찬
고전적인 수목에서
번역본처럼 까다로운 메타세콰이어, 히말리아시다까지
총 망라해 소장된 그늘 도서관에 갔네
나는 그중 가장 고루하고 진부한 스토리의
느티나무 한 권을 빼내었네
그리곤 인심 좋은 공원이 제공한 넉넉한 벤치를 차지해
한가로운 독서를 했네
지난 통속물은 그렇더군
질겅질겅 씹다 뱉은 듯한 흰구름과
씨브럴씨브럴 악쓰며 부르는 매미의 노래
그렇게 바람이 훌훌 넘겨주는 책장을 따라가다 보니
독서는 어느새 훌쩍 끝이 났네
그러나 사실
저 유서 깊은 그늘의 전통은 그런 것이 아니라네
보시게,
사방으로 아름드리 고목이 빽빽하게 꽂혀 있고
녹음이 울울창창 지저귀는 그 속에
푸른 책장으로 얼굴을 가린 채 맛보는 저 시퍼런 낮잠이란?
어떤가 자네, 나와 함께
드릉드릉 코를 골아 보지 않겠나
- 박이화, 「그늘 도서관」 -
해가 뉘엿뉘엿해질 무렵 도서관 문을 나서 올라온 길을 되짚어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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