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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하와이1 - 마우이섬 MAUI 으로

by 장돌뱅이. 2012. 6. 5.

잠시 아내와 떨어져 지낸다.
같이 있을 땐 늘 게으름을 피우고
개구장이처럼 아내에게 갖가지 투정이나 부리면서도
막상 떨어져 있으면 또 떨어져 있는 것을 불편해 한다.

지난 여행을 돌아보는 것은 위안이 된다.
벽장 속에 넣어둔 곳감처럼 야금야금 꺼내서
곱씹어 보는 맛이 달콤하다.
할 수 있을 때 해두어야 하는 것중에
'아내와 함께 하는 여행'을 빼놓을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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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캘큘레이팅 RECALCULATING. 리캘큘레이팅......”
지시한 방향에서 벗어나자 내비게이터에서 다급한 여자목소리의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마우이섬의 카훌루이 KAHULUI 공항에 도착하여 차를 빌리면서 함께 빌린 것이었다.
곧 익숙해지긴 했지만 처음 나는 내가 가야할 장소를 입력하는 것도 남의 손을 빌려야
할 만큼 내비게이터 작동에 서툴렀다.

 

*위 사진 : 엘에이공항에서


한국에서부터 내비게이터를 달라는 아내와 딸의 요청을 나는 예전부터 거부해왔던 터였다.

“지도와는 달리 내비게이터에는 영혼의 울림이 없잖아.”
새로운 도구를 익히는 것에 게으른 버릇을 숨기고 시쳇말로 좀 ‘있어 보이는’
이유를 둘러대며 폼을 잡으려다가,
“그거 아빠가(당신이) 만든 말 아니지. 멋있는 말만 있으면 다 인용하는 버릇이라니...”
하는 딸아이와 아내의 빈정거림을 들은 적도 있었다.

게다가 초행의 어두운 밤길이었다. 나는 자주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경로에서
이탈하곤 했다. 이번에서 교차로에서 방향을 바꾸어야하는지 어쩌는지를 헷갈려하며
우물거리다 타이밍을 놓치고 화면에 표시된 장소를 지나치곤 했다. 그럴 때마다 기계는
같은 톤의 목소리를 바쁘게 뱉어내며 다시 목적지로 가는 경로를 수정하였다.

카훌루이 시내를 벗어나자 길은 좁고 어두웠다. 도로의 이정표도 거의 없었다.
우리는 우리가 마우이섬의 어디쯤을 어느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채 오로지 네비게이터에 의지하며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 도구가 없을 때 사람들은 이 마우이섬을 밤에는 어떻게 운전을 하고 다녔을까 궁금해질 정도였다. 
 

 

엘에이에서 마우이 MAUI 섬 까지는 비행기로 5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서울에서 방콕 정도 가는 거리이다. 한 시간이면 국토의 끝까지 날아갈 수 있는 우리나라
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내와 나는 여행을 할 때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국토의 거대함에
경탄하거나 질리곤 했다. 하와이와 엘에이와의 시간차는 3시간, 미동부와는 무려 여섯
시간이나 차이가 난다.

다섯 시간 이상 걸리는 비행기에서 기내식 서비스를 받지 못한 것도 처음이었다.
서비스는 있었지만 유료였다. 신문에서 본 적이 있는 고유가의 후유증을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전자 티켓에 “MEAL SERVICE : FOOD TO BUY”라는 글을 보고 미리
식사를 하고 비행기에 오른 터라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뭔가 손해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맥주라도 먹어 ‘본전’을(?) 빼야겠다는 생각에 한 캔 먹을 수 있냐고 했더니

필리핀계 아저씨 승무원은 별로 상냥하지도 않은 투박한 목소리로 7달라씩이나  달라고 하여
옹달샘을 찾은 토끼처럼 그냥 물만 먹고 말았다.
 


*위 사진 : 하와이 군도(출처 : 구글) -우리의 첫 기착지인 마우이는 사진에 "A" 로 표시된 섬이다.


우리가 흔히 하와이라고 할 때 호놀룰루HONOLULU 와 와이키키 WAKIKI가
있는 섬을 생각한다.
주도(州都)인 호놀룰루가 있어 행정의 중심지이며 하와이 전체
인구의 8할에 해당하는 약 90만 명의
인구가 사는 곳이다 보니 그 섬을 하와이 전체를
대표하는 섬으로 봐도 무리는 없겠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그 섬의 이름은 하와이가
아닌 오하우 (OHAU)이다.

하와이 HAWAII 는 미국의 한 주로서 여덟 개로 이루어진 군도(群島) 전체를 일컫는
이름이여 또한 여덟 개 섬 중에서 가장 '큰 섬'(BIG ISLAND)의 이름이기도 하다.
마우이는 두 번째로 큰 섬이다. 한 때는 이곳에 하와이의 수도가 있었다고 한다.
인구는 7만 명 정도가 된다.


 


*위 사진 : 마우이섬 여행 개념도. 동그라미 친 곳이 이번 여행의 주방문지이다.(출처 : 구글)

여행자로서 마우이섬의 매력은 “THE VALLEY ISLAND”, 즉 바다와 산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데 있다. 마우이섬에는 하와이 특유의 멋진 바다와 함께
할레아칼라 HALEAKALA 라는 세계 최대 휴화산의 국립공원이 있다.
거기에 하와이의 옛 수도이며 고래잡이배들의 기지로서 번창했던 도시 라하이나
LAHAINA의 풍경을 빼놓을 수 없다고 했다.

마침내 내비게이션이 목적지인 마카와오 MAKAWAO 의 숙소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첨단 장비 덕분에 공항에서 숙소까지 운전을 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핸들을
꺽은 기억만 남는 시간이었다.

오래전 농장관리자의 숙소였다는 반얀트리하우스 BANYAN TREE HOUSE는 기대에 다소 미치지 못했다.
최근에 손질을 한 듯 문을 열고 입구에 들어서자
페인트냄새가 다소 역하게 코를 찔러 왔다.
특별히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오래된 것과는 다른 의미의 허술함이 내비치는 곳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3일 밤을 묵을 곳이었다.
짐을 풀고 낯선 환경에 눈을 자주 맞추자 그런대로 괜찮아 보이기도 했다.
지붕 위로 무수한 별을 품은 하늘이 가깝게 내려와 있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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