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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하와이3 - 할레아칼라 HALEAKALA 국립공원

by 장돌뱅이. 2012. 6. 5.

새벽 4시.
핸드폰에 맞춰둔 알람소리가 울리자마자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간밤의 염려와는 달리 비를 몰고 왔던 먹구름이 물러가고 그 자리에 초롱초롱한 별들이
가득했다. 오늘은 해를 볼 수 있겠구나.
“이야호!”
나는 소리를 지르며 서둘러 아내를 깨웠다.

할레아칼라 정상까지는 지도상의 거리 자체보다 도로의 여건 때문에 시간이 걸리는
길이다. 산허리를 감고 감으며 올라가야 하는데다 꼭대기에 올라갈수록 급하게
꺾어야 하는 구간이 자주 반복되면서 좀처럼 속도를 내기 힘든 탓이다.
숙소가 있는 마까와오 MAKAWAO로부터는 1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정상의 고도는 10,023 피트 (3,055미터).
지구상에서 가장 짧은 거리로(37마일) 가장 높은 고도를 오를 수 있는 구간이라고 한다.
 


*위 사진 : 이것을 가져가 무엇에 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비지터센터에서는 이곳에
               올랐다는 증명서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해돋이를 보기에 적절한 곳은 정상이 아니라 바로 아래 있는 할레아칼라 비지터 센터였다.
해 뜨는 방향으로 그곳이 정상보다 확 트인 시야가 확보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 사진 : 비지터센터에 도착했을 때 본 동쪽 하늘

주차장은 벌써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고, 차를 타고 온 사람들은 비지터 센터와
그 옆의 전망대에서 동쪽 바라보며 해를 기다리고 있었다. 
 

 


*위 사진 : 아침해를 기다리는 사람들

우리도 그 인파 속으로 끼어들었다. 날이 몹시 추웠다. 바람은 그리 강하지 않았으나
맞바람이어서 두꺼운 잠바를 입고 모자에 장갑까지 끼었음에도 몸을 움츠리게 되었다.
추위에 못 견딘 사람들은 센터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고 준비해온 모포를 뒤집어쓰고
해가 뜨기만을 기다렸다.

그런 중에도 반팔에 반바지 차림으로 우뚝 서서 캔맥주를 마시는 마징가제트 같은
사내도 있었다. 주목 한번 받아보려는 오버액션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러기에는
그의 나이가 좀 들어보였고 표정이 너무 태연했다.
나도 한 때 장소와 시간과 안주를 불문하고 술을 마셔야 한다고 주장했던 처지이지만
3천 미터 고지에서 이른 새벽에 마시는 그 술이 그리 맛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지리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동쪽 하늘이 용광로 속의 쇳물 빛을 띄는가싶더니
한줄기 햇살이 눈을 쏘듯 달려들었다. 한번 내비친 햇살은 삽시간 쑥쑥 자라 온
세상을 비추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환성을 올리며 아침 해를 환영했다.

어느 곳에서든 아침 해는 싱싱하고 신선하며 또 신성하다.
산 아래에서 찌들은 기운과 해묵은 잘못들이 아침의 맑은 햇살로 씻겨나가는
고해성사를 받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또 다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라는 의미만으로
아침을 맞는 행위는 축복이 된다. 잠깐일지언정 누가 그것을 의미 없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으랴. 상징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남루해지는 법이다. 
 

 

 

 


   NO VISIT TO MAUI IS COMPLETE WITHOUT MAKING THE REQUISITE PILGRIMAGE

   AT DAWN TO WATCH THE SUN RISE ABOVE THE HUGE CRATER.
                                               - 론리플래닛 중에서 -

거대한 사발처럼 생긴 할레아칼라 분화구(를 닮은 지형) 속속들이 아침 햇빛이 가득
담길 때까지 우리는 전망대에 서 있다가 그 위쪽의 WHITE HILL OVERLOOK으로 올라갔다.
햇살과 함께 점차 추위가 가시기 시작했다. 솜털처럼 부드러운 구름이 바다를 이룬 한
편으론 마치 달 표면 같은 분화구들이 햇살 속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위 사진 : WHITE HILL OVERLOOK에서

뿌우울라울라 전망대 PU‘U’ ULA ULA (RED HILL) OVERLOOK는 화이트힐 보다
좀 더 높은 곳에 있다. 하늘을 쳐다보아도 바다 쪽을 내려다보아도 가로 막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할레아칼라의 정상, 3천여 미터의 고지였다. 
 

*위 사진 : WHITE HILL OVERLOOK 에서 올려다 본 정상

옛날 한 여신이 해가 짧아서 자신의 옷을 제대로 말릴 수 없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녀의 아들 마우이 MAUI는 이곳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해가 뜨자 그는 오랏줄로 햇살 하나하나를 묶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움직일 수
없게 된 해는 그에게 사정을 했다. 마우이는 다음부터 해가 이곳을 지날 때
천천히 지나가는 조건으로 묶인 줄을 풀어주었다. 이 때문에 이곳의 날은 길어졌고
이 산은 할레아칼라(HOUSE OF THE SUN)로 불리어졌다. 실제로 할레아칼라의 해는
아래 해안 쪽보다 15분 정도 길다고 한다. 
 

 

 

전설 속의 해가 천천히 지나며 거침없이 퍼붓는 햇살에 바람도 숨을 죽인 듯
정상 언저리에는 아늑하고 따뜻한 기운이 가득했다. 거기에 발아래 있는 구름이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우리의 걸음은 구름 위를 가볍게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위 사진 :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우이섬 풍경. 아내의 뒷쪽으로 멀리 보이는 산너머로
             라하이나 LAHAINA가 있고 오른쪽 바다쪽이 카훌루이쪽이다.

다시 화이트힐로 내려와 우리는 슬라이딩 샌드 트레일 SLIDING SAND TRAIL로 들어섰다.
아내와 한 시간만 걸어 들어갔다가 돌아 나오자고 했다. 
 

 

 

왜 ‘슬라이딩 샌드 트레일’인가는 몇 걸음 안가서 알게 되었다.
모래들이 급경사면을 따라 아래 쪽으로 흘러내리는 듯한 모습 때문에 붙여진 이름 같았다.
우리가 걷는 길은 경사면을 가로지르며 가늘게 나 있었다.

 

가끔씩 발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고 서 보았다.
모든 소리는 오래 전 이곳에서 있었던 격렬한 폭발과 함께 소진되어 버렸을까?
바람소리마저 멎은 듯 귓가엔 깊고 아득한 적막만이 맴돌았다.

 

 

모래와 흙, 그리고 바위만으로 이루어진 이색적인 풍경이 주는 매력은 다른 곳에서
쉬이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매력에 빠진 우리는 한 시간으로 예정했던 트레킹을
두 시간 가까이 진행하고서야 가까스로 멈추었다. 이젠 발걸음을 되돌려야지 돌려야지
하면서도 한 시간을 더 끌어온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순찰대원이 이곳에 들어왔다가 실종된 사람에 대한 인상착의를
알려주며 혹 본 적이 없느냐고 물었다. 우리가 들어온 쪽이 아닌 다른 곳에서 혼자
트레킹을 시작했던 그 사람은 이틀째 숙소로 돌아오지 않고 연락이 두절되었다고 한다.

 

 

혹 그도 우리처럼 할레아칼라의 아름다움에 취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너무 깊숙이 들어오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그의 무사귀환을 빌며 우리는 시작점으로 돌아왔다.

 

*위 사진 : 산에서 내려오는 길

이른 아침부터 시작한 산행에 우리는 조금은 지쳤고 무엇보다 배가 고팠다.
산에서 내려와 숙소가 있는 마까와오 MAKAWAO 근처의 식당 CASANOVA DELI에 들렸다.
그리고 피자와 팬케익, 달걀요리와 오렌지 쥬스를 시켜 그야말로 게 눈 감추듯 해치웠다.

 

 

*위 사진 : 식당 CASANOVA DELI

배가 든든해지고서야 비로소 마까와오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마까와오는 어제 다녀왔던 HANA 보다도 더 작은 읍내 같은 거리였다.
숙소 몇 곳과 식당 그리고 갤러리와 수공예품점 몇 곳이 전부인 듯 했다.
아내는 화려한 유리공예품에 감탄을 했다.
역시 이곳에서도 눈 호사로 끝내고 말았지만.

 

 

 

숙소로 돌아와 우리는 저녁 무렵까지 짧은 낮잠도 자며 휴식을 취했다.
숙소 수영장 옆에 의자를 놓고 바라보는 하늘이 어제와는 달리 어제와는 푸르기
그지없었다. 공기도 한층 더 투명해진 듯 했다.

 

*위 사진 : HA BALDWIN BEACH PARK

해가 지기 전 HA BALDWIN BEACH PARK로 나가서 바다를 구경했다.
거친 파도 속에서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그처럼
물 위에서 혹은 물 밑에서 즐기는 다양한 바다 스포츠가 있지만
바다는 아직 내게 관조의 대상이다.
드넓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이기도 하다.
가장 낮은 곳이기에 그토록 가장 넓은 세상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은
늘 내게 신선한 감동을 준다.

 

 

그리고 HALI'IMAILE GENERAL STORE 에서의 저녁.
게살 피자의 음식이 맛도 좋았고 다른 곳에서는 만나기 힘든 음식이라 기억에 남았다.
전체적으로 퓨전푸드를 내놓는 것 같았는데
어느 것 하나 처지는 것이 없는 준수한 맛이었다.

 

 

왜 식당에 ‘제너럴스토아’ 라는 말을 넣었느냐고 물었더니
원래 잡화점을 하던 곳을 개조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건물 외형 자체가 식당이라기 보다는 잡화점에 어울려 보였다.
작은 일이지만 옛 흔적을 조금이라도 남겨두려는 마음씨가 정겨워 보였다.
적어도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지난 것이라면 아예 흔적조차 없애버리는 우악스러움보다는
현명해 보였다.

 

아내는 장돌뱅이의 사진 모델을 별 불평 없이 해준다.
그런데 가끔씩 위 사진처럼 몽니를 부리는 듯한 표정으로 촬영에 협조를 안할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것이 심술이 아니라
지극히 만족스럽거나 행복할 때
아내가 만들어보이는 애교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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