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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하와이4 - 마우이섬 돌아보기

by 장돌뱅이. 2012. 6. 5.

잠결에 동쪽 창문에 뭔가 강렬한 빛이 느껴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문을 열고 나가니 구름에 비친 아침노을이었다.
불탄다는 표현이 걸맞게 하늘은 온통 붉은 빛이었다.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다 갑자기 생각나는 게 있어 방으로 돌아와 카메라를
들고나가니 그 사이에 붉은 빛은 허망하게 사위어 그 자리에 있던 검은 구름이
드러나고 있었다. 마치 신기루를 본 듯한 느낌이었다. 
 

 

원래 오늘은 아래 사진에서 보는 몰로키니 섬 MOLOKINI CRATER 로 스노클링을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날씨가 문제였다. 아침 일찍 출발하여 오후에 돌아오는 일정이라
하루 전에 예약을 해야 했었는데 삼일동안 경험한 마우이의 날씨가 너무 급변하는
모습이어서 스노클링이 가능할까에 대한 확신을 하기 힘들었다. 도대체 강수확율
30%는 어떻게 행동을 하는 게 맞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인터넷으로 미리 날씨 정보를 아는 게 이럴 땐 병일지도.
거기에 우리의 숙소가 좀 높은 곳에 위치한 탓인지 기온이 낮아 바닷물 속에 들어가야
하는 스노클링은 우선 심정적으로 내키지 않았다. 

 

위 사진 : 몰로키니 섬 (마우이의 여행사 trilogy 홈페이지에서 인용)

하지만 막상 비가 올 것 같지 않은 아침 하늘을 보자 몰로키니섬에 대한
욕심이 나기도 했다. 놓친 열차는 늘 아름답다고 하던가.
애석하게도 놓친 그 열차는 다시 오지 않는다.
삶과 여행은 유한하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갖는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또 다른 선택에 충실 할 수밖에 없다.
((나중에 다녀온 사람의 말을 들어보니 몰로키니섬의 스노클링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했다. 섬의 풍광은 사진으로 보는 게 낫다고.)

우리의 대안은 차로 섬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마우이에서의 두 번째
숙소이자 마지막 숙소가 있는 라하이나 LAHAINA로 가는 것이었다.

몰로키니에 가지 못한 아쉬움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대신에 우리는 아침의
느긋함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대여섯 시간의 보너스가 백지로
주어진 것이다. 나는 책을 읽으며 아내가 잠에서 깨어나길 기다렸다.
그리고 서로 잠에서 깨어난 부스스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실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낄낄거렸다.

느지막이 자리에서 일어난 우리는 사흘 밤을 머무른 숙소의 주인장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어제 오후에 들렸던 식당 CASANOVA DELI로 갔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 마을의 이웃인 듯 아는 체를 하며 서로 밝은 얼굴로 인사를 나눴다.
이방인인 우리에게까지 가벼운 눈인사가 건너왔다. 
 

 

우리는 커피와 간단한 식사를 주문하여 도로를 향한 바깥쪽 좌석에 앉았다.
마까와오의 거리는 어제처럼 한산했다.
드문드문 차가 지나갈 뿐 도로엔 햇빛이 가득했다.
커피맛은 좋았고 서둘 것 없는 우리는 마냥 느긋했다.

 

 

*위 사진 : 카나하 해변

식사를 마치고 마우이의 서쪽 해안으로 가기 전 카훌루이 시내 가까이 있는
카나하 KANAHA 비치파크와 이틀 전 가보았던 호오키파 HO OKIPA 해변에 가보기로 했다.
카나하 해변은 사람이 거의 없이 한적했다. 인기척에 놀란 게 몇 마리가 부산한 발걸음으로
모래 속에 몸을 감출 뿐이었다. 우리는 돗자리를 깔고 자리를 잡았다.
파도는 부드러웠다. 아내는 신을 벗고 바닷물에 발을 적셨다.
나는 먼 수평선에 눈을 던진 채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바람도 부드러웠다.
가끔씩 카메라를 들어 파도와 장난질을 치는 아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위 사진 : 호오키파 해변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있는 호오키파 해변은 같은 바다인데도 파도가
거칠었다. 햇살에 드러난 바다는 이틀 전 흐린 날씨 때와는 달리 싱싱한 옥색이었다.
수많은 구릿빛 청춘들이 작은 보드 위에 몸을 싣고 환호하듯 파도 위를 미끄러지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은 바다가 지닌 매력이었다. 
 

 

 

운전을 하고 다니다보니 마우이 곳곳에 사탕수수 밭이 눈에 띄었다.
하와이의 사탕수수 밭. 그 곳에는 우리 선조들의 고달픈 이민의 역사가 숨어 있다.
농장의 부족한 일손을 메우러 1900년대 초 이곳 하와이까지 와야 했던 그분들에게
낯선 작물이었던 사탕수수를 다루는 일은 고통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사탕수수 잎들이 억세고 날카로워 자칫 잘못하면 살을 찢어대서 보자기를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보자기를 쓴다고 해도 잎에 찢기고 줄기에 찔려 얼굴
   한두 군데에 흉이 안 난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얼굴은 손에 비하면 성한 편이었다.
   보자기로 감쌀 수 없는 손은 흉터투성이였고, 흉터 위에 또 실피가 맺히는 상처가
   쉴 새 없이 나고 있었다. 손바닥은 연장을 다루느라고 마디마디에 못이 박이고,
   손등은 사탕수수의 잎과 줄기에 찢기고 긁혀 흉터와 상처가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중에서 -


잠시 수수밭 옆에 차를 세우고 그 앞에 아내를 서있게 했다.
길에서 볼 때는 키가 작아 보이던 사탕수수는 아내의 키를 훌쩍 넘는 높이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선조들에게 정말 힘들었던 것은 낯선 자연이나 작물보다
그들에게 일을 시키고 그들이 만나야 했던 낯선 사람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올챙이’ 시절을 잊지 않는 겸손한 자세가 있다면  
우리 사회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어려움도 많이 줄어들 수 있으리라.
 

*위 사진 : 마우이 서남부 칼라마 공원

마우이 서남부 바다는 동쪽보다 잔잔해 보였다.
키헤이 KIHEI의 바다와 인접한 칼라마 KALAMA 공원에서 바다를 보다가
공원 맞은 편에 있는 “LOCAL BOYS SHAVE ICE”란 작은 가게에서
SHAVE ICE를 먹었다. 쉐이브아이스는 얇게 갈아낸 얼음 위에
여러 가지 현란한 색상의 시럽 SYRUP 을 뿌린 일종의 빙수이다.
 

 

 

 

*위 사진 : LOCAL BOYS SHAVE ICE

갈증을 달래는 시원한 하와이식 빙수도 좋았지만 그곳 젊은 주인의 싹싹함과 명랑함도
인상적이었다(유감스럽게도 이름을 잊어먹었다). 좁은 가게 곳곳에 아들 사진을 붙여놓은
그의 마음이 우리를 따뜻하게 했다. 아들이 귀엽게 생겼다고 덕담을 건네니 함박웃음을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곧추세운 주먹을 들어보였다.
작고 허름하지만 유쾌한 가게였다.
 

*위 사진 : 라하이나 인

KIHEI에서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40분쯤 달려 오늘의 숙박지인
라하이나 LAHAINA 의 라하이나 인 INN 에 도착했다.
한 때 하와이의 수도이기도 했던 라하이나는 포경선의 기지로 번영을 누렸고
지금은 그 시절이 남긴 분위기로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곳이다. 

 

 

*위 사진 : 라하이나 인

라하이나인은 시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라하이나를 걸어서 돌아보기에 좋은
위치에 있다. 밖에서 보기에는 건설공사장의 가건물 같으나 안에 들어가면
장식과 구조, 벽지의 색상과 디자인이 옛 분위기가 나는 작은 숙소이다.
 

 

 

*위 사진 : 라하이나 거리

짐을 풀고 우리는 바다 가까이 난 도로를 따라 시내 구경을 나섰다.1900년대 초기의
도로변 건물들에는 여느 해안관광지처럼 식당, 기념품점, 다이브샾, 카페, 갤러리 등이
줄 지어 들어서 있었다.
 

 

*위 사진 : PETER LIK의 사진과  GALLERY

우리는 PETER LIK 이라는 작가의 GALLERY에서 들려 풍경사진첩을 샀다.
전문가들의 사진을 그냥 보는 것, 그리고 그것을 흉내 내는 것이 노출도 촛점도 모르는
똑딱이 수준의 내가 하는 사진공부라면 (그냥 보는 것이므로 공부가 아니라 감상이지만) 공부다.
 

 

 

 

 

*위 사진 : 식당 PACIFIC' O

다리가 아플 즈음에 나온 해변 식당, 퍼시픽 오 PACIFIC' O 에서 식사를 했다.
먼저 갈증을 달래기 위해 맥주를 달랬더니 종업원 아가씨는 어떤 맥주를 원하느냐며
이름을 불러댄다. 그 중에 귀에 쏙 들어오는 이름이 있어 서둘러 주문을 했다가
아내의 한심스럽다는 눈총을 받기도 했다.
비키니 맥주!

 

 

 

 

*위 사진 : 라하이나 거리와 바닷가 풍경, 저녁무렵부터 다시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갔던 길을 천천히 되짚어 걸어서 호텔로 돌아왔다. 발코니에 앉아 거리를 내려다보며
노트북에 저장해간 연속극도 보고 책도 읽으며 휴식을 취했다.
비키니 맥주가 좋아서(?) 그런지 배가 쉬이 꺼지지 않아 숙소 내에 있는
라하이나 그릴에서 늦은 저녁을 먹어야 했다. 
 

 

 

*위 사진 : 식당 LAHAINA GRILL

저녁나절부터 몰려들던 먹구름은 밤사이 기어코 비를 뿌렸다.
쉬지 않고 해변에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창문을 넘어 들려왔다.
꿈도 없는 깊은 잠을 잤는데도 그 소리들은 잠 속에까지 스며들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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