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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터어키

우연한 터어키 여행 7.- 마르딘 MARDIN.

by 장돌뱅이. 2005. 3. 7.


*실로피에서 마르딘으로 나오는 버스 안에서 본 평야지대.

이곳저곳에 연락을 취해보았지만 국경통과서를 터어키의 외무부로부터 받는 일은 기약없는 답보 상태였다.
어느 나라건 공무원들과 관련한 일은 늘 시간을 요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그 시간 때문에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었다.
이라크 측에서도 여러 경로로 연락을 취하고 터어키 내의 지인을 통해 노력을 했지만 모두가 허사였다.

이번 여행을 준비한 사람들의 명백한 준비 소홀이었다.
앞서 이라크로 들어간 사람들의 말만 믿은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일행은 요르단의 수도 암만을 경유하여 이라크로 들어가기로 결정을 했다.
요르단으로 가기 위해선 다시 앙카라까지 열다섯 시간의 버스 이동 후 암만으로 가는 터어키 항공을 타야했다.

나는 일행과 헤어지기로 했다.
국내 일이 밀려 이라크까지 동행을 하기는 곤란했다.


*마르딘 전경.

아침 일찍 나는 일행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실로피를 출발했다.
앙카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작은 도시, 마르딘 MARDIN 에서 나는 하차를 했다.
며칠 동안 함께 한 일행들이 버스 창가에 붙어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나도 손을 흔들며 마음 속으로 전장 속으로 들어가는 그들의 안전을 빌어 주었다.

버스가 길모퉁이를 돌아가고 나서야 나는 천천히 마르딘의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예약을 해두었던 마르딘 발(發) 이스탄불 행 비행기는 이튿날 오후에야 있었다.
혼자 마르딘에서 일박을 하게 된 것이다.

식구들과 함께 국내 여행을 하다보면 가끔씩 원래의 목적지를 지나쳐 엉뚱한 곳으로 차를 몰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식구들에게 말하곤 한다.
“이런 일이 아니면 우리가 이곳을 언제 와 볼 수 있겠어?”

살다보면 우리는 우연히 예정하지 않았던 시간이나 장소 혹은 사람과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나는 그런 무수한 우연을 좋아한다.
그것이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심오한 뜻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지만
뜻하지 않고 준비하지 않았던 모든 것들과의 우연한 만남은 내게 언제나 신비롭고 싱싱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여행과 삶을 풍요롭게 하는 소중한 선물이기도 하다.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하고 노래한 시인이 있다.
나아가 불교의 윤회를 믿지 않아도 우리는 무심히 스쳐지나가는 옷깃에 영겁의 인연이 닿아 있음을 말하곤 한다.
어쩌면 우연이란 없는 것인지 모른다.  
지상의 어느 곳 혹은 누구와 무엇으로 만나건.

마르딘 MARDIN.
이번 여행 자체가 우연하게 이루어졌고 게다가 그것이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으면서 덤처럼 만나게 된 도시이지만
나는 하룻밤을 지낼 호텔에 체크인을 하면서 마치 오래 전부터 마르딘의 여행을 준비해 온 것처럼 기대에 부풀었다.

그렇게 세상의 낯선 모든 것을,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모든 시간을, 
나는 언제나 어린 아이처럼 부푼 가슴으로 만나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라도.

마르딘은 특이하게도 산 정상부에 발달된 오래된 도시였다.
산은 나무가 없이 바위로 이루어졌거나 마른 먼지가 풀풀 날리는 흙으로 되어 있었다.
흙벽돌로 지은 옛 건물과 콘크리트로 근래에 지어진 건물이 산비탈을 따라 혼재하고 있는
마르딘의 전체적인 인상은 누런 흙빛의 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인지 삭막하고 스산한 느낌이었다.
외관만 보면 우리나라의 달동네같기도 했다.

마르딘의 빌렌 호텔은 팜플렛의 사진처럼 멋진 모습은 아니었다.
복도는 좁고 어두웠고 방은 썰렁했다.
그러나 하루 저녁의 20불짜리 잠자리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준비도 없었던 마르딘에서의 오후와 뒷날 오전의 소일을 위해 나는 후론트에 있는 호텔 여종업원에게 매달렸다.
그녀는 마르딘의 약도를 꺼내 여행자가 가볼만한 곳과 식당 등 몇몇 군데를 표시해 주었다.
그것은 그대로 나의 마르딘에서의 일정이 되었다.

호텔 종업원이 알려준 곳은 주로 종교 사원 유적지로 카톨릭계의 수도원이거나 이슬람교 사원이었다.
어느 곳은 걸어서도 갈 수도 있었지만 어느 곳은 시 외곽에
위치하여 택시를 이용해야 했다.
건축물마다 대부분 퇴락한 외관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퇴락함은 만만찮은 세월과 역사를
상징하는 연륜같은 것이었다.

터어키의 역사에서는 이단에 대한 가혹한 박해의 기록보다는 다른 종교와 문화에 대한
관용과 포용의 기록을 자주 읽을 수 있다고 한다. 마르딘도 그런 점에서 예외는 아닌 듯 했다.
수백 년 동안 기독교의 성소와 이슬람 교회가 결코 크지 않은 이 작은 도시 안에
공존해 왔던 것이다.

자신에게 없고 부족한 것과,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한 인정과 사랑이 모든 종교의 가르침이라면
마르딘과 터어키인은 그 계율의 가장 진솔한
실천자들이겠다.
그리고 그런 실천의 역사야 말로 오늘의 세계가 되살려야
할 소중한 가치일 것이다. 

   "새로운 세계에서는 상이한 문명에 속하는 국가들과 집단들의 관계는 우호적이지
   않고 대체로 적대적인 경향을 띨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날
   것으로 예상되는 관계는 문명간의 관계다....... 거시적 차원에서 보면, 지배적 대립은
   서구 대 비서구의 양상으로 나타나겠지만, 가장 격렬한 대립은 이슬람 사회와 아시아
   사회, 이슬람 사회와 서구 사회에서 나타날 것이다. 미래의 가장 위험한 충돌은 서구의
   오만함, 이슬람의 편협함, 중화의 자존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할 것이다. "

새뮤앨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에 나온 글이다.
그의 주장은 터어키에서는, 적어도 마르딘에서는 목소리를 낮추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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