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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터어키

우연한 터어키 여행 5 - 재키찬이 되다.

by 장돌뱅이. 2005. 3. 2.

실로피의 호텔에서 하루 일과는 단순했다. 아침에 전화통에 매달려 연락을 취하고 나면
그 다음 일은 상대방의 연락을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나는 시간을 죽이기 위해 책을 읽거나 아니면 실로피의 대로변과 골목길을 돌아다녔다.

호텔을 나서는 순간부터 개구쟁이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장터거리의 각다귀’ 같은 녀석들이었다.
어떤 아이는 단순히 호기심에 쫓아다녔고 어떤 아이는 돈을 달라고 하였으며 어떤 아이는 구두를 닦으라고 졸라댔다.
특별한 오락거리가 없는 이곳의 아이들에게 외국인의 출현은 지나칠 수 없는 사건이자 오락거리였나 보다.
참새처럼 쉴 사이 없이 조잘대는 녀석들에게
일일이 대꾸하는 것도 힘들었다. 나중엔 그냥 미소만 흘려주었다.

 녀석들은 결코 지치거나 싫증도 내지 않고 내가 다시 호텔로 돌아갈 때까지
어디를 가든 끝까지 따라붙었다. 구두닦이라도 피해 볼 요량으로 두 번째 외출부터는
운동화를 신어도 보았지만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녀석들은 그냥 구두통을 맨 채로 따라왔다.

그래도 무조건 돈을 달라고 보채는 아이보다는 구두닦이가 나아 보여 한번은 구두를
닦아오라고 시켰더니 솔로 먼지만 털어가지고 와서 한국 돈 500원 정도를 달라고 했다.
아마 구두약 살 돈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구두를 닦는 비즈니스가 실로피에서 그다지
실속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나를 재키찬으로 불렀다. 아마 홍콩 영화의 등장인물과 한국인의 생김새가
비슷함을 생각해서 그들이 던지는 친근감의 표시였을 것이다.
멀고 외진 외국의 거리에서 세계적인 배우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나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재키찬이 한국의 홍대 앞이나 강남 거리를 대낮에 활보한다고 해도 내가 실로피에서
몰고 다녔던 숫자만큼의 ‘팬’들은 따라붙지 않을 것이다.
처음엔 성가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그 아이들도 실로피의 한 모습으로
생각하자고 스스로 마음을 바꾸니 편한 웃음으로 대할 수 있었다.

“이해해 달라. 불쌍한 아이들이다. 돈이 없어 학교도 가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다.”
호텔 사장인 소미 SOMI 의 말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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