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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빈 의자에 앉기

by 장돌뱅이. 2025. 5. 15.

정치적 사태가 일상을 잠식하면서 세상을 '우리' 아니면 '적'으로 나누는 무리들이 생겨난다.
포유류를 토끼와
'비(非)토끼'로 나누면 고래와 코끼리가 한 범주에 들어가게 되는 법이다.
세상을 나누는 전제, 그 자체에 대한 고민 없이 결과를 가지고 상대방과 금을 긋는 건 비논리적이다.

우선 '종북'이라느니 '좌파'라느니 하는 말이 그렇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 결코 북을 맹종하는 일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서로에게 더 좋은 어떤 미래를 논의할 필요가 있을 때, 더군다나 같은 문화와 역사를 지닌 대화의 동등한 상대로서 북을 인정하는 일은 필요할 것이다.

스탕달은 『적과 흙』에서 '
인간에게 말이 주어진 이유는 생각을 숨기기 위해서'라고 했다. 걸핏하면 '종북'이라 거니 '평양에 가서 살라'느니 하는 말로 대화의 진전을 끊는 건 정작 이면의 다른 마음을 숨기려는 방어기제이거나 타인을 대화가 아닌 언어적 폭력으로 제압하려는 공격 전술일  뿐이다.

'좌파' 역시 세상 어느 나라에나 어느 시기에나 존재하는 정치적 사상이고 세력이다.
좌파가 없으면 우파도 없고 진보가 없으면 보수도 없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흔히 말하듯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며 어느쪽으로 날 것인가는 결국 다수의 평화적인 선택에 달려 있다.

상대방의 목소리를 일거에 제거하려는 '쾌도난마'가 아니라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의 자유와 무제한의 질문과 목소리가 보장되는 더 많은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절실한 시간이다.

시인 문태준은 '생각한다는 것은 빈 의자에 앉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섣부른 선입관과 아집, 공허한 욕망과 전망을 털어내거나, 아직 그런 것들이 자리 잡기 전의 투명한 상태로 돌아갈 때까지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라는 뜻이라고 읽었다.

*사족 : 쓰고보니 이런 나의 횡설수설은 자칫 사태의 원인을 양비론으로 끌고가는 잘못을 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 12월 이후의 혼란은 저들 말대로 '자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불법적인 내란과 폭력이라는 섬뜩한 범죄에서 비롯되었다. 결코 어떤 이념이나 정치적 입장의 차이가 원인이 아니다. 
명백한 범죄에는 엄정한 단죄만 있을 뿐 타협이나 양보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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