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아마 지금도) 하상욱 시인의 짧은 시가 인기를 끌었다.
그의 시는 간결·명료하면서도 우리 생각의 이면이나 약점을 유머러스하게 꼬집었다.
시에 '거룩한' 의미를 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말장난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문학이란 의미나 철학 이전에 즐거움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그의 기발한 시를 읽는 것이 충분히 즐거웠다. 머릿속에서 청량제들이 작은 불꽃처럼 팡팡 터지는 느낌이랄까?
일테면, 아래와 같은 시를 읽을 때.
고민
하게 돼
우리
둘 사이
- 「축의금」-
바빴다는 건
이유였을까
핑계였을까
- 「헬스장」-
매일
널 꿈꾸고
매일
널 외면해
- 「퇴사」-
그것이 전통적인 의미로는 시가 이니고 '시 비슷한 것'이면 무슨 상관이랴.
AI가 시도 써준다는 세상에 기존의 기준으로 새로운 것을 재단하려는 건 너무 '라떼'스러운 일이다.
최근에 디카시(Dica詩)라는 걸 알게 되었다.
디카시는 디지털 카메라(휴대폰)로 일상생활 속에서 만나는 자연이나 사물의 형상을 포착하고 이를 시적 언어와 결합한 것으로 디지털 시대가 만들어낸 일종의 퓨전 예술이다.
언술(言述)은 대개 5행 이내로 짧아야 한다고 해서 하상욱의 시와 닮아 있다.
일본 고유의 짧은 시 '하이쿠(俳句)'나 유튜브의 쇼츠(Shots)도 연상시킨다.
2004년 경남 고성에서 지역 문예 운동의 하나로 시작된 디카시는 이제 중·고교의 교과서에도 나오고 시험 문제에도 출제가 될 정도라고 한다. 국제디카시페스티벌도 열리고 디카시작품상도 뽑는다.
10회째인 올해는 복효근 시인의「겨울사모곡」이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어제 강변에서 저녁 노을을 휴대폰으로 찍었다.
이럴 때 디카시'라도' 한 수를 읊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아주 잠깐 욕심을 내보다가 나의 상상력이 기껏해야 '한 때 빛나던 것들의 스러짐'하는 식으로 너무 상투적임을 깨닫고, 최백호의 노래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낭만에 대하여'를 흥얼거리고 말았다.
능력에 닿지 않는 시 쓰기 보다 좋은 시를 가려 읽을 줄 아는 안목을 키우며 살 일이다. 그것도 어려운 일이긴 하다. 소란스러운 세상에 시가 해법이 될 리는 없다. 그래도 저녁노을을 그저 매일 반복되는 자연현상이라고만 보지 않으려는 '낭만'같은 시 한 소절이라도 기억해야 삶을 견디기가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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