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 이성복, 「그 여름의 끝」-
오래전 아내와 어린 딸아이와 함께 담양의 명옥헌에 이르는 길모퉁이를 돌아섰을 때 갑자기 눈에 가득 다가오는 나무 백일홍의 강렬함에 가슴속 덜컹 소리를 들으며 멈춰 서야 했습니다.
그리고 셋이서 모두 '아! 하고 탄성을 질렀습니다.
이제 여름의 끝자락에 서서 절정은 '한 차례 그리고 그 다음 폭풍에도 ,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의 억센 장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당과 연못 위로 절망과 함께 '장난처럼' 떨어진 꽃들에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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