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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해 지는 풍경을 넘어

by 장돌뱅이. 2024. 8. 29.

해 지는 쪽으로 가고 싶다.

들판에 꽃잎은 시들고

나마저 없는 저쪽 산마루

- 박정만, 「해 지는 쪽으로」-

자신의 존재를 뛰어넘어 피안(彼岸)으로 건너가려는 의지를 담은 불교의 선시(禪詩) 같지만, '들판에 꽃잎은 시들고'가 발목을 잡는다.
혹 모든 것이 스러지는 해질녘, 고통에 몸부림치는 지금 여기를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시인 박정만의 삶이 시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는 80년대 이른바 '한수산 필화 사건'에 연루되어 보안사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은 후  후유증에 시달리다 사망했다.
애초에 그 필화 사건이라는 게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박정만의 경우는 더 황당한 일이었다.

한수산은 7080 시대에 감각적인 문체의 소설로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던 작가였다.
떠돌이 유랑곡마단의 쇄락해져가는 삶과 그 속에서도 피어나는 끈질긴 사랑과 허무한 죽음을 그려낸  그의 장편소설 『부초』를 대학시절 지금의 아내와 함께 읽은 적이 있다.
70년대 신업화와 도시화, 화려한 서구문명에 밀린 우리의 삶을 이야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거칠게 분류한다면 한수산은 ‘현실참여파’라기 보다는 ‘순수문학’ 쪽에 가까웠던 작가였다.
그런데 그가 81년 5월, 당시로서는 어마무시한 보안사에 연행되어 모진 고초를 겪는다.
일년 전부터 중앙일보에 연재하고 있던 소설『욕망의 거리』때문이었다. (그 소설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특별한 정치적 의식을 담지 않은 '1970년대를 배경으로 남녀 간의 만남과 사랑을 통속적으로 묘사한 전형적인 대중 소설이었다'고 한다.

문제가 된 것은 소설 전체가 아닌 지극히 지엽적인 한두 개의 문장이었다.
'군데군데 등장하는 군인이나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에 대한 묘사가 대통령 전두환을 비롯한 당시 제5공화국의 최고위층을 모독하는 동시에 군부 정권에 대한 비판 의식을 담고 있다'는 것이었다.

“월남전 참전 용사라는 걸 언제나 황금빛 훈장처럼 닦으며 사는 수위는 키가 크고 건장했다. 그는 지금도 그 수위 복장에 대해서 남모를 긍지를 가지고 있는 듯싶었다.······ 하여튼 세상에 남자 놈 치고 시원치 않은 게 몇 종류가 있지. 그 첫째가 제복 좋아하는 자들이라니까. 그런 자들 중에는 군대 갔다 온 얘기 빼놓으면 할 얘기가 없는 자들이 또 있게 마련이지······.

당시에 들었던 말로는 '배가 나온 대머리' 하는  표현도 있었다고 한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한수산은  “그런(당시 보안사령관이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우리나라에 살고 싶지 않다”며 절필을 선언하고 일본으로 떠나버렸다.

나는 공항에서 눈이 가려졌고, 신원을 알 수 없는 세 명의 폭행 속에서 승용차 재떨이에 이마를 처박힌 채, 어디론가 끌려갔다. 거기서의 며칠 몇 밤을 이제 와서 떠올릴 분노조차 나는 가지고 있지 않다. 도구만은 기억한다. 찢기고 부서져 가는 내 알몸 위로 쏟아지던 몽둥이, 물, 전기, 주먹과 발길, 매어달림······. 그리고 굴비 엮듯 끌려와 무슨 골프 코스라도 된다고, 같이 돌아야 했던 나의 정 깊었던 선배 친구들. ‘산문시와 같은 언어와 사랑과 죽음의 미학’을 그려낸다는 비평적 관형사를 이름 위에 얹고 살아가던 한 작가를 그들이 쥐어짜 무엇을 얻어내려고 했는지를 나는 아직 모른다. 다만 20여 일의 입원 생활을 끝내고 나오며 내가 한 결심의 부스러기란, 아들을 낳아야겠다는 것이었고, 그 이름 노 아무개를 잊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나는 아들을 낳았고, 그 이름을 잊지 않았고, 담배 세 곽 이상 피워야 하는 정서 불안에 살아가고 있고, 그 ‘사건’에 엮어졌던 시인 하나는 지금 거의 폐인이 되어 있다.
- 한수산, 「노태우 후보의 부천 유세 참관기」, 『신동아』(1987. 12.) -

위 증언 속 '지금 거의 폐인이 된 시인'이 바로 박정만이다.
박정만은 당시 출판사에 근무하여 한수산의 글과 아무 상관이 없었으나  절친이라는 이유로 끌려와 끔찍한 고문을 받았던 것이다. 그 후 박정만은 직장에서 밀려나고 수백 병의 소주를 폭음하며 고문 후유증을 견디다가  1988년 10월 2일 노태우가 대통령의 자격으로 서울올림픽 폐막 연설을 하는 동안에 서울 변두리의 셋방에서 홀로 눈을 감고 만다.

노을을 보며 산책을 하다 시를 생각하다 소설가와 시인이 겪어야 했던 야만의 시절을 떠올린 건 아마도 요즈음 우리나라의 권력자가 걸핏하면 내뱉는 수상한 말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 내부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반국가세력들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개전 초기부터 이들을 동원하여, 폭력과 여론몰이, 그리고 선전, 선동으로 국민적 혼란을 가중하고 국론 분열을 꾀할 것입니다. 이러한 혼란과 분열을 차단하고, 전 국민의 항전 의지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강구해야 합니다.”

'체제 위협, 반국가세력, 암약, 폭력, 선전, 선동, 국론 분열, 전 국민 항전 체제······.'
어쩌다 시절이  '과자 사준 아저씨 알고 보니 간첩'하던 때로 되돌아간 것 같다.
으스스해지는 건 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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