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살 때 가까이 지냈던 빨간내복님의 따님이 결혼을 했다.
식순이 다 끝났다, 돌아서 하객들에게 절하는 새 부부에게, 힘찬 박수로 축하를 보냈다
콩꺼풀이여 벗겨지지 말지어다
흰콩꺼풀이든 검정콩꺼풀이든 씻겨지지 말지어다
색맹(色盲)이면 어때 맹맹(盲盲)이면 또 어때
한평생 오늘의 콩꺼풀이 덮인 고대로 살아갈지어다
어떻게 살아도 한평생일진대
불광(不狂)이면(不及)이라지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느니
이왕 미쳐서 잘못 본 이대로
변함없이 평생을 잘못 볼지어다
잘못 본 서로를 끝까지 잘못 보며
서로에게 미쳐서[狂]
행복에도 미칠[及] 수 있기를
빌고 빌어주며 예식장을 나왔다, 기분 좋은 이 기쁜 날.
- 유안진, 「콩꺼풀」-
빨간내복님 부부도 우리처럼 무남독녀 외동딸을 키운 터라 결혼식을 지켜보는 마음이 행복하고 즐거우면서도 어딘가 허전한, 복잡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딸의 결혼식을 치르고 빨간내복님 부부는 먼 남쪽 로스카보스로 여행을 떠났다.
나는 딸 결혼을 빙자한 부모의 신혼여행이라고 놀려주었다.
"그래야 돼. 우리도 결혼시키고 딸이 떠난 빈자리가 커 보였잖아."
아내가 말했다. 벌써 10년 전 일이지만, 아내는 그때의 감정을 생생히 기억한다.
가족이 3명 있을 때는 대화의 상대가 A-B, B-C, A-C, A-B-C 이렇게 4가지 경우가 되지만 한 사람이 빠지면 오직 A-B, 한 경우만 남게 되는 것이다.
딸아이를 결혼시키고 우리는 별 필요가 없는 중국어학원에 등록을 했다. 격일로 나가는 학원에서 내주는 쓰기와 암기의 '빡쎈' 숙제를 하는 동안 무기력해지는 마음을 잊기 위해서였다.
이른바 '빈둥지 증후군'이라고 하던가. 빨간내복님 부부는 서로 워낙 강한 '콩꺼풀'을 장착한 닭살부부인지라 머지않아 '빈둥지'를 튼실한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생활 동안 나의 가장 큰 변화는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는 것과 부엌일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빨간내복님은 그중 나의 부엌일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처음 그의 맛깔난 음식을 대했을 나는 그에게 '모든 남자들의 공공의 적'이라고 농담투의 공격을 했지만 사실 속내로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그의 빼어난 기타 연주 보다도 그의 음식 솜씨가 더 부러웠다.
선한 사람들.
선한 영향력.
그들 부부를 보면 생각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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