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저하의 하굣길 마중을 나갔다.
친구와 함께 걸어나오다 나를 보자 친구에게 말했다.
"콜팝 먹고 가자."
뭐라고 하며 머뭇거리는 듯한 친구에게 저하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외쳤다.
"괜찮아. 우리 할아버지가 너도 사줄 거야. 그치 할아버지?!"
콜팝 하나씩을 들고 비가 오는데 굳이 놀이터에서 놀고 가겠단다.
나는 비를 피할 곳에 앉아 저하와 친구가 노는 걸 지켜보았다.
둘은 놀이터 미끄럼틀을 오르내리며 (친구도 최근에 해외여행을 다녀왔는지) 비행기의 이착륙과 비상착륙, 좌석의 등급과 기내식에 대하여 끊임없이 말을 주고받았다.
내 앞을 지나가면서는 묻지도 않았는데 지금 '비행기 놀이' 중이라고 알려 주었다.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지만 어제는 아시아나 놀이를 했고 오늘은 대한항공 놀이라고 했다.
한참을 그렇게 보내더니 지금부터 얼음땡 놀이를 한다며 나에게도 동참을 하라고 했다.
나는 '말뚝' 술래가 되어 비오는 놀이터를 숨을 헉헉거리며 뛰어다녀야 했다.
주말은 딸아이의 결혼기념일이었다.
아내와 나는 딸과 사위에게 저하들은 우리가 맡을 터이니 모처럼 둘이서 1박2일 여행을 다녀오는게 어떻겠냐고 권했다. 둘은 고민을 하는 듯하더니 손자1호가 축구대회에 참가해야 해서 저녁에 둘이 나가 식사만 하고 오겠다고 했다.
딸아이는 외출 전 저하1호가 쓴 결혼기념일 축하 편지를 읽어주었다.
제법 길게 쓴 편지에는 축하 인사와 함께 앞으로 착한 장남이 되겠다는 - 동생에게 잘하고 정리정돈과 청소도 잘하겠다는 '지키지 못할 것 같은' 공약을 남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편지 말미에 이렇게 썼다.
"오늘 엄마 아빠는편히 쉬세요. 나머진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 해주실 거예요."
맞벌이 부부로 바쁜 와중에도 둘이서 알콩달콩 잘 지내며 두 아이들에게도 더 할 수 없이 진심인 딸과 사위가 대견하고 고마울 뿐이다. 아내와 나는 자주 어제처럼 오늘을 살자는 말로 서로를 격려하는데 같은 말을 딸과 사위에게도 결혼기념일의 덕담으로 들려주었다.
"더도 덜도 말고 이제까지처럼만 앞으로도 살아라. 고맙다."
해묵을 수록 좋은 것은 사랑뿐이라 믿는다.
내가 만약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면
그것은
오직
그대 때문입니다.
- 헤르만 헤세,「내가 만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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