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가을 계획

by 장돌뱅이. 2024. 9. 24.

나이가 들며 자주 반복하게 되는 말. 세월 참 빠르다. 올해도 벌써 4분의 3이 지났다. 
직장에 다닐 때는 연초 영업 계획에 대비하여 달성율을 계산하고 달성하지 못한(늘 미달성) 수치에 대하여 이유를 분석하고 향후 대책으로 부심할 때다. 달성하지 못한 이유는 대개 소털처럼 많지만 대책은 소뿔처럼 한두 가지로 단순한 법이어서 기껏 발표를 하고 나면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에 가서 놀라면 누가 못 놀아?' 하는 비아냥 섞인 지청구를 듣기 일쑤다.   

백수가 되고 나서는 무엇에 대해서 건 다부진 결심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작심삼일의 의지박약인 나 자신을 잘 알고 있기에 연초가 되면 쉬운 계획 몇 가지만 생각해 볼뿐이다.
그런데 아무리 그런다고 해도 계획을 생각하다 보면 자꾸 욕심이 들어가 무리를 하게 된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도 그렇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특별한 계기도 없었는데 언제부터인가 '1일 1 포스팅'이란 목표를 세우게 되었다. 이제까지 한 달 동안 빼먹지 않고 글을 올린 것은 지난 8월 딱 한 번이었다. 7월엔 한 번을 빼먹어서 아깝게(?)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밤늦게 밀린 글을 쓰느라 좌판을 두드리는 나를 보며 아내가 말했다.
"왜 괜한 계획을 세워서 자신을 들볶는 거야? 예전처럼 쓰다 못쓰면 내일 쓰면 되지."

맞는 말이었다. 9월부터는 '개과천선' 그러지 않으려 했는데 아직까지 매일 쓰고 있다.
그 사이에 관성이 붙은 것이다.

*티스토리를 하기 전 홈페이지 시절의 초기 화면

최근에 들어 강변에서 달리기를 해보았다.
연초 계획(생각) 중의 하나였지만 그동안 걷기만 하고 달리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몇 차례 달려보니 처음 뛸 때보다는 한결 수월해졌다.
앞으로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5∼6km를 달려볼 생각이다.

날이 선선해져서 청계산에도 올라봤다.
올해는 이런저런 일들이 있어 등산을 하지 못했다.
지난여름 몹시 무더운 날 북한산에 오른 것이 유일했다.
올 가을에는 달리기와 번갈아 가며 서울 근교의 산을 좀 더 자주 오르려고 한다.

청계산 옥녀봉에서 본 관악산

군대에 있을 때 아내가 영어 성경 『Good News Bible』을 사다 주었다.
애인의 정성이 좋아 한동안 끌어안고 잔  『Good News Bible』 은 내무 사열에 지적받을 일이 없는 데다가, 영어 공부까지 할 수 있고, 나의 짧은 영어 실력으로 해석이 안 되는 부분은 내무반에 굴러 다니는 한글 성경을 보면 되므로 유용한 책이었다.

그런 속내도 모르고 영어 성경을 읽는 걸 보고 나를 영어 실력자로 혹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오해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덕분에 부대 밖 교회로 예배를 보러 나가는 신자들을 따라 잠시 바깥 구경을 하는 '위장 신자' 노릇하기가 수월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례를 받으려면 술과 담배를 끊어야(끊는다고 말해야) 한다는 전도사의 말에 포기해야 했지만. 기독교와 상관없이 살았으면서도 아내 덕분에 『Good News Bible』은 제대를 하고 나서도 두세 번 더 읽었던 것 같다. 

미국에 주재할 때 카톨릭신자가 되면서 가톨릭 신자용 성경을 샀는데 첫 몇 장만 읽고는 덮어둔 지 오래되었다. 같은 성경이라도 『Good News Bible』과는 달랐다. 단어와 문장이 조금 더 어려웠다.
올 가을엔 공관복음서부터 천천히 읽어볼 생각이다.
영어에 서툰 만큼 문장문장을 더 꼼꼼히 읽게 되는 이점이 있을 것이다.

매번은 마음은 먹어보지만 가장 안 되는 일이 그림 그리기다.
마술도 그렇다. 추석에 손자저하 1호가 물었다.
"왜 요샌 마술을 안 가르쳐줘요?"
이번 가을엔 다시 도전!
한 달에 최소 그림 한 장! 마술 한 가지!

결혼할 때 통장을 보니 전 재산 70만 원이 있었다. 집에 손을 벌릴 처지도 아니어서 여기저기 빚을 냈다.
아내와 제대로 된 신혼여행도 가지 못했다. 가까운 충청도 일대를 잠깐 돌아보았을 뿐이다. 
아마 아내가 없었다면 지금도 나의 통장엔 70만 원만 남아 있을 것이다. 
 올 가을은 결혼 40주년이 된다. 신혼여행처럼 여행을 떠나보려고 한다.

적고 보니 또 욕심을 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하게 되면 하고 말게 되면 말고 천하태평 느긋한 일상을 보낼 생각이다. 
'행복은 진실보다 더 위대하다'라고 했다.

젊은 시절엔 경멸하기도 했던 러시아 속담이지만 사실 그 두 가지는 같은 것 아닐까?

'일상과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0) 2024.09.26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  (0) 2024.09.25
손자저하 부모의 결혼기념일  (0) 2024.09.22
'우리 모두 일어나 나라를 지킵시다!'(퍼옴)  (0) 2024.09.21
옛 사람  (0) 2024.09.2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