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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by 장돌뱅이. 2024. 9. 26.

미국생활 7년에 남은 것은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 떠난 여행의 기억만이 아니라 아름다운 사람들과 나눈 관계다. 나를 천주교로 이끌어 주신 수녀님은 미국 생활을 돌아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분이다.
(그리고 이 글을 볼 지도 모를 패트릭과 빨간내복, 알폰소 그리고 한국에서 '샌디에이고 향우회'로 연락을 주고받는  두 사람도 있다.)
'인생은 사랑하기에는 너무 짧고 증오하기에는너무 길다'고 하지 않던가?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자주 만날수록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아내와 함께 오래간만에 수녀님을 만났다. 지난 겨울 이후 직접 뵙는 것은 처음이었다.
서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몸이 편찮으셨던 수녀님은 수술까지 받으셨다. 다행히 건강한 모습으로 회복되신 듯했다. 목소리도 기운차시고 얼굴빛도 예전처럼 맑고 밝으셨다.
식사를 마치고 수녀님의 안내로 한국순교복자수녀회를 둘러볼 수 있었다.
수녀님과 함께 걷는 수녀원엔 경건하고 깊은 고요와 투명한 가을 햇살이 가득했다.  

*유해경당(성인들의 유해를 모신 곳)

단 한 번 일지라도
목숨과 바꿀 사랑을 배운 사람은
노래가 내밀던 손수건 한 장의
온기를 잊지 못하리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도
거기에서 비켜서지 않으며
어느 결에 반짝이는 꽃눈을 닫고
우렁우렁 잎들을 키우는 사랑이야 말로
짙푸른 숲이 되고 산이 되어
메아리로 남는다는 것을

강물 같은 노래를 품고 사는 사람은 알게 되리
내내 어두웠던 산들이 저녁이 되면
왜 강으로 스미어 꿈을 꾸다
밤이 길수록 말없이 
서로를 쓰다듬으며 부둥켜안은 채
느긋하게 정들어 가는 지를

누가 뭐래도 믿고 기다려주며
마지막까지 남아
다순 화음으로 어울리는 사람은 찾으리
무수한 가락이 흐르며 만든
노래가 우리를 지켜준다는 뜻을

- 정지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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