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 술만 더 먹어보자

한 술만 더 먹어 보자 17

by 장돌뱅이. 2024. 10. 14.

퇴계 이황은 생전에 반찬을 세 가지만 놓고 먹었다고 한다. 제자가 찾아갔을 때 밥을 내주는데 반찬이 무와 가지, 미역뿐이었다. 그런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은 장아찌나 나물, 아니면 그냥 생재료였을 것이다. 제자는 차마 내색을 못 하고 힘들게 먹었지만 선생은 맛있게 먹었다.
소박한 상차림으로 식사를 하는 선비의 단아한 자세가 느껴진다. 조선 미학의 근본이라는 검이불루(儉而不陋,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다)는 이럴 때도 쓸 수 있는 말일 것 같다.


보리밥 한 공기 / 반찬은 세 가지 / 김치와 된장과 상추. 

먼저 상추쌈을 먹는다. / 상추 한 잎에 / 보리밥 한 숟갈 / 김치 한 조각- / 이래서 김치맛, 상추 맛을 즐긴다. // 다음은 보리밥 한 숟갈 떠먹고 / 된장 한 젓갈 찍어 먹는다. / 구수한 된장 맛이 / 구수한 보리밥으로 다시 더 없는 된장 맛이 된다. 

이제 보리밥이 / 3분의 1쯤 남았다. / 그러면 지금부터는/보리밥만으로 먹는다. / 보리밥만 떠서 / 천천히 씹노라면 /달고소한 보리밥 맛이 / 천하일품이다. 

보리밥 한 공기로 / 세 가지 맛을 즐기는 / 이런 밥먹기는 / 내가 먹는 버릇이고 / 내가 깨달은 방법이고  / 내가 찾아낸 밥먹기다. / 절대로 남에게 권하고 싶지 않다. 

사람은 사람마다 / 입맛이 다르고 / 사람마다 버릇도 다르고 /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 / 저마다 먹고 싶은 대로 / 먹을 일이다. // 다만 나는 / 김치를 좋아하고 / 된장 맛을 즐기고 / 상추가 먹고 싶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보리밥의 참맛을 / 잊지 못해서 / 이렇게 먹는 것이다.

- 이오덕,「보리밥 먹기」-

우리도 텔레비전이나 유튜브에 나오는 화려한 음식들에 눈이 사로잡히고 입안에 침이 돌다가도 가끔씩은 단순하고 담백한 맛이  그리워질 때가 있지 않은가.
일테면 물만밥에 고추장을 찍은 마른 멸치, 된장이나 간장에 절인 짠지, 혹은 곰삭은 젓갈 같은.

그런 생각을 하며 만든 음식 몇 가지.

1. 무된장국

- 무 200g을 나박썬다.
- 멸치육수 4C에 된장 1.5S를 풀고 끓인다.(염도에 따라 조절)
- 무를 넣고 끓이면서 거품을 제거한다.
- 대파 한 대를 어슷 썰어 넣고 한 소끔 더 끓인다.
- 슴슴한 맛을 위해 마늘을 넣지 않고 따로 간을 하지 않는다.


2. 멸치고추장볶음
- 중간 크기의 멸치 2C를  손질하여 기름 없는 팬에 볶아 다른 그릇에 덜어둔다.
- 양념장(고추장 2T + 올리고당 1.5T + 식용유 1T + 양조간장 1T + 다진마늘 1T + 맛술 2T + 후춧가루  약간)을 끓이다가 다진파 2T를 넣어 한 소끔 더 끓여준다.
- 볶은 멸치를 넣어 버무리고 잠깐만 볶는다.
- 참기름과 깨소금을 적당히 추가한다.


3. 묵은갓김치볶음
가을엔 새 김장김치를 맞이하기 위하여 묵은 김치통을 비워야 한다.
남은 갓김치를 볶아 보았다.
- 다진마늘과 다진대파를 식용유에 볶는다. 김치 김치의 양에 따라 양이 다르므로 적당량.
- 씻어 물기를 제거한 갓김치 한 줌을 적당한 크기로 썰어 넣고 함께 볶는다.
- 설탕 1/2S와 물 1/2C를 넣고 조린 후 들기름(참기름)을 1S를 넣어 살짝 더 볶는다.

볶은신김치를 좋아하는 아내가 말했다.
"이런 음식이 고기보다 맛있지? "
나는 그 말에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걸 내가 만들었다는 사실에 어깨에 힘을 줘보았다.

* 이상 C는 컵(200ml), S는 밥숟가락, T는 큰술(테이블 스푼), t는 작은 술(티 스푼)
* 별도 표기 하지 않는 한 대부분의 경우 2인분 기준이다.

'한 술만 더 먹어보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 술만 더 먹어 보자 19  (0) 2024.11.04
한 술만 더 먹어 보자 18  (0) 2024.10.22
한 술만 더 먹어 보자 16  (0) 2024.10.10
한 술만 더 먹어 보자 15  (0) 2024.10.07
한 술만 더 먹어 보자 14  (2) 2024.09.3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