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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핼러윈 놀이

by 장돌뱅이. 2024. 11. 1.

작년 이즈음 어린 손자 저하가 옛 중고생들이 입던 검은색 교복을 입고 어린이집에 갔다.
코미디언 임하룡이 신던 빨간 양말까지 신었다. 영문도 모르는  저하는 모자 쓰기를 싫어했다.
"웬 복고 코스튬? "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에게 옛날 복장을 입혀오라는 행사를 했다는 것이다.

국공립 어린이집에서는 유아들에게 서양문화인 핼러윈을 교육과정에 넣을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한해 전의 이태원참사를 의식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어린이집 원장의 교육 방침인지 모르겠지만 하필 그날에 옛날 복장을 입고 오라고 한 것은 어쩐지 '핼러윈 아류'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그냥 핼러윈파티를 하는 게 나을 것도 같은데 말이야."
딸아이가 말했다.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하는 다른 학부모의 마음도 같았을 것이다.
내가 조금 놀랐던 것은 그런 틈새를 노린, 복고 의상의 상품이 이미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미국에 주재할 때 한 한인 개신교 교회에서는 핼러윈을 마귀들의 놀이로 규정하고 핼러윈 저녁에 아이들을 불러 모아  밤늦게까지 놀이와 찬송가를 부르는 행사를 했다.
다분히 핼러윈 코스튬을 하고 집집마다 찾아가 'Trick or Treat(사탕을 주지 않으면 장난칠 거야)'를 외치며 과자를 받아가는 아이들의 놀이를 원천봉쇄 하기 위한 행사였다.
나는 그거야말로 아이들의 소중한 어릴 적 추억을 빼앗아가는 '마귀놀이'가 아닐까 생각했다.

딸아이는 저하들을 위해서 집안 곳곳을 핼러윈 장식들로 가꾸었다.
마침 새로운 어린이집에서는 핼러윈 행사를 했다.
부모 외에 추가 손님으로 저하2호는 영광스럽게도 할아버지를 지목해 주었다. 

저하는 꼬마유령 캐스퍼복장으로 등원을 했다.
나는 나중에 행사시간에 맞춰 마술사 해피포터의 망토를 걸쳐야 했다.

이제 핼러윈을 우리 문화와 상관없는 단지 서양문화일 뿐이라거나 서양문화와 이를 증폭시킨 상업문화의 결합일 뿐이라고 주장, 배척하려는 건 그다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있는 현실을 현실로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건전한 놀이문화가 될 수 있도록 안내하고 가르치는 게  어른들의 도리일 것 같다.
더군다나 거기에 종교적 의미를 덧씌우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따지고 보면 수입도 상업적이거나 종교적 의미도 다 어른들이 키워온 일들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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