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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다시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

by 장돌뱅이. 2024. 11. 5.

어제 오후부터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10월 말이 지나도 반팔 티셔츠를 입어도 될 정도로 따뜻하다가 갑자기 추워지니 나무들도 잘 적응이 안 되는 듯 어떤 나무는 노랗게 단풍이 든 반면 그 옆 나무는 여전히 무성한 초록이다.
벌써 시들어 떨어진 낙엽은 마당 한쪽에 두툼하게 모여 있다간
바람에 쓸려 다니기도 한다.

킥보드를 타는 손자저하 뒤를 쫓아다니는 늦가을의 오후는 평온했다.
하 수상한 시절이 무엇을 향해 달려가건 이 평온은  지켜야 한다는,  '세상을 잘못 읽은 자들의 불법적인 도롱이 집'을 위해 고즈넉한 시간에 느닷없이 포탄이 날아들게 할 수는 없다는, 다가오는 겨울을 이겨낼 금빛 추억의 연정을 가슴 속에 다시 품어야 한다는 생각도 해보면서.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아름다움이 세상을 덮으리라던
늙은 러시아 문호의 눈망울이 생각난다
맑은 바람결에 너는 짐짓
네 빛나는 눈썹 두어 개를 떨구기도 하고
누군가 깊게 사랑해 온 사람들을 위해
보도 위에 아름다운 연서를 쓰기도 한다
신비로와라 잎사귀마다 적힌
누군가의 옛 추억들 읽어 가고 있노라면
사랑은 우리들의 가슴마저 금빛 추억의 물이 들게 한다
아무도 이 거리에서 다시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
벗은 가지 위 위태하게 곡예를 하는 도롱이집 몇 개
때로는 세상을 잘못 읽은 누군가가
자기 몫의 도롱이집을 가지 끝에 걸고
다시 이 땅위에 불법으로 들어선다 해도
수천만 황인족의 얼굴 같은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희망 또한 불타는 가슴으로 우리 가슴에 적힐 것이다

- 곽재구,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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