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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또 한 해가 간다

by 장돌뱅이. 2024. 11. 23.

함께 마술(魔術)을 공부(연습)하는 모임에 나가 식사를 했다. 가볍게 낮술도 한두 잔 했다.
나로서는 근 반년 만의 참석이다.
하필 마술 모임 시간이 다른 일과 겹쳐 그동안 참석을 못했다.
연말을 지나서까지 '장기 결석'을 할 수 없어 모처럼 시간을 만들었다.

식사를 거쳐 커피를 마시면서 마술 이야기는 점차 사는 고민으로 바뀌었다.
연말 모임에서 듣고 또 나도 말하는 우리 나이의 고민들은 대개 비슷비슷하다.
작년에도 들었고 아마 내년에도 들을 것이다.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건강 문제와 자식과 손자와 아픈 겨레붙이 간병 문제 등등.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노인들의 말투와 목소리와 걸음걸이가 나이가 많을수록 비슷비슷한 것이 고민을 닮았기 때문일까? 마치 어느 한 점을 향해 수렴하는 입자들처럼.

보름 전쯤 지하철에서 처음으로 한 젊은이로부터 갑자기 자리를 양보받았다.
당황스러웠다. 괜찮다고 사양했지만 고마우면서도 괘씸한(?) 젊은이는 요지부동이었다.
이제 확실한 늙은이로 공증되었다고 아내가 킬킬거렸다.

누군가의 말처럼 "노년은 우리가 그곳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흥미 없는 나라, 젊은이나 중년도 그 언어를 모르는 낯선 나라"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이미 그곳에 와버렸는 걸.
주름이 더 깊어지기 전에 자주 안부를 물으며 사는 수밖에.

언제 한 번 만나자는 말
조만간 한잔하자는 말
믿지 말자 전화를 끊으면서
그것은 내가 한 말이기도 했으므로
약속은 아직 먼 곳에 있고
나는 여전히 동문서답의 헛바퀴를 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일이
어디 약속뿐이랴 뱉은 만큼
못다 한 말들 입속에 바글거리고
만나면 만날수록 결별만 수북수북 쌓인다
그런 게 다 인생이라고 나는 제법
늙어서 흰머리를 툭툭 털면서
발톱을 깎으면서 안경알을 닦으면서
생각하건데, 나는 죄의 신봉자였으니
일기장은 날마다 내게 반성을 촉구했고
지키지 못했으므로 반성은
더 많은 반성을 몰고 왔다
나, 이윽고 죄 많아 빼도 박도 못하겠으니
그대 어디쯤 잘 계시는가 제법 늙었는가
이 꽃이 지기 전에
우리, 폐단처럼 꼭 한잔하자

- 정병근, 「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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