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이 '핫하다'는 소문은 오래되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물론 외국인들 사이에도 널리 알려진 모양이다.
지난달 미국에 살고 있는 지인이 그곳에서 태어난 딸과 함께 한국여행을 왔다.
성수동을 방문한다길래 <카페 onion>을 소개했더니 딸이 이미 알고 있더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다닌 자신이 오히려 딸의 안내를 받으며 따라다니는 처지라고 하여 성수동의 '국제적' 명성과 SNS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잘 먹고 잘 살자 43 - 성수동 카페 "ONION"
성수동은 이런저런 작은 공장들이 모여 있는 지역이다.최근 홍대나 연남동, 혹은 건대입구역 먹자골목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 비싼 임대료에 밀린 상권이 대체 지역을 모색하는, 이른바 젠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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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은 집에서 멀지 않아서 아내와 나도 가끔씩 가보게 된다.
나름 좋아하는 카페와 음식점도 몇 곳 생겼다.
사람들이 몰리는 주말과 휴일은 가급적 피해서 가는데 이번 5월 초의 긴 연휴 마지막 날엔 점심을 먹을 생각으로 한번 가보게 되었다. 예상했던 대로 성수동은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길게 줄을 서있는 음식점과 상점도 자주 눈에 띄었다.
우리가 가려던 음식점은 아쉽게도 브레이크타임 중이었다.
구글에 특별히 휴식시간이 명기되어 있지 않아 쉬는 시간 없이 계속 영업하는 걸로 알았다.
부실한 사전준비에 대한 아내의 지청구를 들으며 서울숲 쪽으로 걸었다.
원래 식사 후 서울숲을 걷기로 했으니 가다가 적당한 식당이 눈에 띄면 들어가기로 했다.
성수동 일대는 상품이나 행사 홍보 등의 단기 이벤트 행사를 하는, 이른바 팝업(Pop-up) 매장들이 많다. 뚝섬역 근처에서는 "Indo Mi"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Indo Mi"는 인도네시아 라면 상표이다.
특별히 "미 고랭(볶음면)" 컵라면을 홍보하는 듯했다.
"미"는 '국수'를 뜻하고 "고렝"은 '볶는다'를 의미하는 인도네시아 말이다.
90년 대 초 나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주재를 하게 되었다.
해외생활이 처음이었으므로 이것저것을 준비하고 알아보기 위해 가족들보다 내가 먼저 갔다.
살게 될 집을 구한 첫날, 같이 부임한 직원과 집 정리를 하면서 점심으로 밖에 나갈 것 없이 간단히 '인도 미'를 끓여 먹기로 했다.
집 앞 마트에서 사 온 인도네시아 라면은 크기가 한국 것에 비해 작아 보였다.
한 개는 양에 안 찰 것 같아서 인당 두 개씩, 거기에 대식가인 직원을 고려하여 다섯 개를 끓였다.
그런데 라면이 봉지가 작은 것이지 라면의 크기가 작은 것이 아니었던가 보다.
끓면서 냄비에 넘치도록 불어난 라면은 반도 못 먹고 버려야 했다.
라면을 먹기 전 호기심에 처음 먹은 인도네시아 쥐똥고추 탓도 있었다.
"우리야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민족인데 까짓게 매워봤자 얼마나 맵겠냐?"
직원의 기세등등에 그야말로 쥐똥만한 고추가 만만해 보여 한 개를 덥석 깨물었다가 둘 다 입안에서 터진 '불폭탄'을 끄느라 급하게 물을 잔뜩 마셔야 했던 것이다.
벌써 몇 번이나 아내에게 들려준 지난 이야기지만 다시 꺼내도 재미있다.
30여 년 전의 그 "인도 미"를 이젠 서울에서도 '핫하다'는 성수동에서 홍보하는 세상이 되었다.
서울숲으로 가다 보니 <윤 경양식>이라는 식당이 눈에 띄었다.
경양식은 70년 대 단연 연애 시절 아내와의 설레는 기억이다.
햄버그 스테이크
영상 요리 강습 마지막 날 '함박스테이크'를 만들었다.'함박스테이크'의 규범 표기는 "햄버그 스테이크(hamburg steak)"다.국립국어원의 사전에는 "서양 요리 중의 하나.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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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스만 해도 종류가 예전보다 많아진 세상이라 <윤 경양식>의 돈가스가 특별한 맛이었다고 하긴 힘들다.(역사가 오래고 경양식으로는 제법 이름이 난 곳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아내와 추억으로 양념을 치며 맛나게 먹었다.
흔히 말하듯 음식은 기억이다.
음식의 일차적인 맛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에 끝난다. 그 뒤로도 길게 이어지는 여운은 음식을 준비하고 나누는 모든 과정과 함께 한 사람과의 행복한 기억이 이끌어간다.
그리고 그 기억은 생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삶은 견딜 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에.
딸아이가 선물한 책, 『작은 땅의 야수들』 의 뒤표지에 있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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