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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어떤 사람들3

by 장돌뱅이. 2012. 11. 28.


방학을 맞으면 샌디에고에는 한국에서 영어 공부를 하러 온 어린 학생들이 많아진다.

여기저기 한 달쯤의 영어 캠프가 많이 있는 모양이다.
초등학생들은 대개 어머니가 따라온다.
교육 장소에 가까운 곳에 숙소를 얻고, 아직 시차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을
깨워 캠프에 데려다주고 나면, 저녁때까지 시간이 남는 엄마들은 같이 온 엄마들과 어울리며 시간을 보낸다.
골프를 치거나 쇼핑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휴일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가까운 레고랜드나 씨월드,
혹은 멀리 엘에이에 있는 디즈니랜드나 유니버설 스튜디오까지 구경을 가기도 하면서.

지난여름 아는 사람이 같은 목적으로 샌디에고를 다녀갔다.
이미 한국에서도 외국인 학교에 다니고 있고, 어릴 적엔 다른 나라에서도 영어 공부를 한 적이 있는
초등학교 저학년의 그 아이들은 나와는 차원이 다른 부드러운
영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구태여 더 이상의 영어가 필요할까 싶을 정도였다.

부모의 손길로 다듬어진 아이들의 옷매무새는 흠잡을 곳 없이 세련되었고,
구김살 없이 자란 아이들 특유의 해맑음과 경쾌함으로 보는 사람을 즐겁게 했다.


로돌포는 RODOLFO는 우리 회사 경비다. 콧수염을 기르고 축구를 매우 잘한다.
운동장에서 매우 격렬하게 뛰는 그지만 운동장 밖에선 뜻밖에 수줍음이 많다.
하루는 그가 직원을 통하여 여섯 살배기 딸아이를 일주일만 회사에 데려오게 해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맞벌이 부부인데 딸아이를 봐주던 여동생에게 갑자기  사정이 생겨
돌보아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회사에 어린아이를 데려오는 일은 코미디 영화에서나 보았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러라고 했다.

그런데 허락을 하고 나니 걱정이 생겼다. 도대체 여섯 살짜리가 부모의 일터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커다란 트럭이 들락거리는 공장을 함부로 돌아다니게 할 수도 없고,
안전을 위한다고 아빠와 떨어져 낯선 사무실 빈방에서 혼자 놀라고 할 수도 없었다. 
경비실 한쪽 아빠와 한 공간에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아직 책을 못 읽는다기에 장난감 한두 개와 색연필 따위를 마련해주라고 했다.
하지만 무엇을 주어도 그곳에서 보내야 하는 하루가 어린아이에겐 매우 길고 지루한 시간일 것이다. 
작고 통통한 얼굴의 귀여운 아이였다. 출근길에 일부러 차를 멈추고 음료와 약간의 간식거리를 건네줄 때면
 “그라시아스
GRACIAS!”(고맙습니다) 라고 수줍어하며 오물거리듯 말을 했다.

풍요로운 가정에서 태어나 먼 나라까지 영어 공부를 하러 온 아이들도,
좁은 공간에서 하루를 견뎌야 하는 로돌포의 어린 딸도 모두 자신들이 선택한 환경이 아니다.
그냥 운명적으로 주어졌을 뿐이다. 자신들의 의지로 이룩한 것도 선택한 것도 아니라면,
그리고 부모들조차 자신의 아이들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무선택의 결과로 나타난 세상의 차별적 모습은 무엇으로 설명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결국 저 하늘 어디쯤에 계시다는 ‘그 양반’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다.
눈으로 확연히 보이는 이런 불합리의 저변에 '그분'은 어떤 섭리와 신비를 심어놓은 것인가?
아니 그게 무엇이건 정말 심어놓기라도 한 것인가?
심어놓았다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그분'만이 아는 듯한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낯설고 좁은 공간에서 긴긴 하루를 견뎌야 하는 로돌포의 어린 딸에게 그것이 따꼬 TACO 한 점보다 큰 의미일까?


삶은 그냥 사는 것이라는, “예술도 없고 목숨 이상의 잉여분도 없는” 들판의 풀처럼 그냥 사는 것이라는,
“그냥 사는 것의 의미”라는 누군가의 그 말, 
지천명(知天命) 나이가 한참을 지난 내게도 여전히 너무 어려운 그 말이,
정말 저 높은 곳 '그분'이 심어놓은 뜻인지······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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