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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어떤 사람들2

by 장돌뱅이. 2012. 11. 27.


*위 그림: 이중섭의 「가족」"


90년대 초 인도네시아에 근무할 때의 이야기다.

이슬람 최대 축제이자 명절인 르바란 LEBARAN이 다가왔다.
나라에서 정한 공식적인 휴가는 3일이었다. (지금은 5일이 되었다고 하던가?)
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많은, 대개 일주일 정도를 쉬었다.
내가 몸담고 있던 회사는 당시 공장을 짓던 중이라 휴가 중에도 희망자를 모아서 일을 진행하려고 했다.
건설 공사는 '공기'(공사 기간) 단축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먼저 직원들에게 실제로 얼마를 쉴 것인가 솔직히 적어내라고 했다.
당시만 해도 회사의 방침에 상관없이 각자의 사정에 따라 쉬는 사람이 많았고,
나오겠다고 해놓고 출근하지 않아 휴일 특근 계획을 망친 경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한 현황을 파악한 후 명절 근무에 대한 추가 인세티브를 걸고 설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희망 휴가 일수는
천차만별이었다. 
그중에 무려 25일을 쉬겠다고 적어내 우리를 놀라게 한 사람이 있었다. 

“아니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무리 명절이라고 25일을 쉬겠다는 건 좀 심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고향까지 가는 데만 10일 가까이 걸린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명절 이동을 한반도의 크기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동서 길이가 미국보다 길다. 게다가 섬나라이다.
그는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고향 섬을 가기 위해 기차와 버스와 배를 여러 번 바꿔 타야 한다고 했다. 
비행기는 그에게 너무 비싼 교통 수단이었다. 교통편을 바꿔 타는 환승 대기 시간도 상당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수년 만에 가보아야 할 사정이 있다니
잘 다녀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멕시코 공장에 올해 입사한 떼오 TEO는 덩치가 큰 사내이다.
그의 임무는 사무실에서 시작하여 계단과 화장실을 매일 청소하는 일이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일이 아니다 보니 그가 받는 급여는 주는 사람이 미안할 정도로 작다.

그래도 그는 항상 기운차고 명랑하다. 
많은 직원들 중에서 그가 눈에 띈 이유는 마주칠 때마다 건네는 우렁찬 목소리의 인사 때문이다.
그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청소를 한다. 어떨 때는 자기 흥과 일에 빠져 가까이 다가가도 모를 때가 있다.
그때 갑자기 놀라게하면 눈을 크게 뜨며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애교스런 
표정으로 웃는다. 
자기 일을 마치면 시키지 않아도 공장에
들어가 다른 사람들의 일까지 거들어주며 유쾌하게 어울린다고
직원들은 자주 입을 모은다.


그는 혼자 산다. 가족은 무려 3천5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베라크루즈 VERACRUZ에 있다.
비행기로 3시간 정도의 거리지만 기억 속의 인도네시아 직원처럼 그도 비행기 이용은 불가능한 사정이었다.
버스로 가면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밤낮을 쉬지 않고 달려서 4일(쉬어서 가면 일주일 이상)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그는 올해 한번 20일의 휴가를 내고 집에 다녀왔다. 
부인이 수술을 받게 되어 어쩔 수 없이 가게된 것이다.

우리 회사는 연말에 2주쯤의 휴가가 예정되어 있다. 다른 회사들도 비슷하게 쉰다. 
그때문에 요즈음 그는 마음이 부풀어있다. 
가고, 머물고, 다시 돌아오는데, 각각 3분의 일씩을 써야 하는 비효율적이고
고단한
일정이지만 그는 가족과 만나기 위해 다시 기꺼이 먼 길을 나설 예정이다. 
한번은 그의 모자(CAP)가 너무 낡아 보여 집에서 내 골프
모자 중의 하나를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서 보니 여전히 낡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내가 준 모자는 고향에 있는 아들에게 주려고 가방에 넣어두었다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모자를 하나 더 가져다주어야 했다.

그를 보면 고향이며 가족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내가 너무 욕심을 많이 내며 사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도 된다.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트리지 않는 사람들 
   
   -
김승희의 시, 「그래도 라는 섬이 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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