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아침, 자재를 담당하고 있는 MR. RAFA(라파)가 가져온 서류를 결재하는데 술냄새가 났다.
그의 쪽으로 가깝게 몸을 기울여보니 더 진하게 풍겨왔다.
"술 마셨나?"
"어제저녁에 많이 마셨다."
"또 아내와 다투었나?"
가끔씩 그가 그런 고민을 상담해서 물어본 것이다.
"아니다. 이번에는 기분 좋아서 마셨다."
"무슨 일?????"
"어제는 이 도시의 사람들이 매우 행복한 날이었다. 우리 팀이 드디어 챔피언 결정전에 나가게 되었다!"
어제저녁 일을 설명을 하며 그는 다시 흥분과 감동이 몰려오는 듯 목청을 높였다.
그래서 새벽 3시까지 마셨다는 것이다.
"어제저녁에 마신 것이 아니라 조금 전까지 마신 거네."
"미안하지만 좀 이해해 달라."
멕시코 프로축구이야기다. 그가 말하는 '우리 팀'은 멕시코 국경도시 티후아나 지역을 연고로 하는 XOLOTZCUINTLES(숄로츠퀸틀레스)라는 긴 이름을 가졌다.
(개의 한 종류를 일컫는 이름으로) 줄여서 숄로스(XOLOS)라고 한다.
멕시코 프로축구는 1부리그에 17개 팀, 2부 리그에 17개 팀이 있다.
리그가 끝난 후 1부에서 꼴찌를 한 팀은 강등되고 2부에서 우승한 팀은 1부 리그로 승격된다.
XOLOS는 사상 최초로, 그것도 2부리그에서 올라온 지 2년 만에 챔피언 결정전에 나서게 된 것이다.
플레이오프 게임 상대인 LEON과의 시합에서는 적지에서 2:0으로 진 불리함을 딛고 홈에서 3:0이라는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흥분한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왔고 일요일 저녁엔 이튿날 새벽까지 온 도시가 감격으로 들썩였다고 한다.
얼마 전 RAFA가 부부 싸움을 한 것은 축구 때문이었다.
그의 아내는 그가 좀더 가정에 시간을 많이 쏟아주기를 희망하나 그는 매 주말이면 축구경기에 나서야 했다. 그는 축구에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어 이곳저곳에서 부르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아내와 계속되는 갈등을 고민하며 그가 내게 진지하게 했던 말은 (메시나 호나우도, 치챠리토 같은 프로선수도 아니면서^^) "축구는 내 인생!"이었다.
나는 오래 전 그에게 우리 회사의 '마라도나'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요즈음 몸의 체형도 은퇴한 마라도나처럼 뚱뚱해져서 탈이지만 경기에만 나서면 아직도 그의 기술과 체력은 건재해 보인다.
나는 그의 배의 돌출부가 가슴보다 들어가면 인센티브를 주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운동을 그렇게 하면서도 배는 점점 나오기만 한다.)
열성적인 축구광인 그와 멕시칸 직원들 전부에게 일생일대의 기억이 될 거라는 생각에 챔피언 결정전 보여주고 싶었다. 경기 티켓을 알아보라고 했더니 그는 즉각적으로 "불가능!"이라고 했다.
연간 회원들에게 우선 판매를 하고 남는 일정 분량의 티켓을 인터넷 예매 없이 몇몇 장소에서 직접 판매하는데 이미 벌써부터 텐트를 치고 밤을 지새우려는 사람들이 늘어서 있다는 것이다.
상대는 멕시코 챔피언 10회에 빛나는 최강팀 똘루까 TOLUCA이고 경기 시간은 오늘 저녁 7시(한국시간 30일 정오)이다. 똘루까는 멕시코시티를 근거지로 한다. 내일은 멕시코 휴무일이다.
12월 1일이 대통령 취임식인데, 토요일이므로 하루 앞당겨 쉰다. XOLOS가 승리를 한다면 연휴를 앞둔 시내는 또 다시 감격한 축구팬들의 아우성이 밤늦도록 메아리칠 것이다.
한국시간으로 오늘 낮 12시.
이 글을 보신 분 중 점심 식사를 하러 나다가 문득 생각이 나시면 마음 속으로 외쳐주시기 바란다.
XOLOS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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